석화 vs 시멘트업계 '탄소중립' 갈등 격화
폐플라스틱 소각 불가피"
석화 "시멘트업계 때문에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 차질"
정부에 시정조치 의견전달
탄소중립 이행 놓고 공방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원료 확보를 두고 석유화학 업계와 시멘트 업계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폐플라스틱 재활용이 필수적인데, 재활용에 쓸 폐플라스틱을 시멘트 업계에서 태워버리고 있으니 소각을 멈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멘트 업계에서는 비용 문제로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11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한국석유화학협회가 최근 정부에 시멘트 업체들이 폐플라스틱 소각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시멘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석회석 등 원재료를 넣고 섭씨 1400도 이상 고온으로 가열(소성)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시멘트 업계에서는 폐플라스틱·폐비닐을 소각해 열원으로 활용해왔다.
석유화학 업계는 주요국이 재생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함에 따라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용기 원재료 중 30%를 재생 플라스틱으로 써야 한다는 지침을 내놨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고객사에서 비용이 비싸도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요구해와 업계가 생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며 "문제는 국내에서 나온 폐플라스틱 중 상당량을 시멘트 업계에서 태워버려 재활용할 원재료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현재 건설 중인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열분해유 공장이 완공되면 최소 연 400만t의 플라스틱 폐기물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대부분을 소각하고 있어 연 100만t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멘트 업계가 폐플라스틱을 태워버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은 분리수거를 거친 뒤 소각되거나 재활용돼야 하는데, 준비가 충분하지 않던 시기에 폐플라스틱 매립량을 줄이기 위해 소각이 추진됐다.
시멘트 업계는 폐기물 매립을 줄이는 한편 폐플라스틱을 열원으로라도 재활용하기 위해 지금까지 소각해왔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시멘트 업계에서 사용하는 가연성 폐기물은 2019년 130만t에서 2021년 230만t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폐플라스틱 소각 외에 유연탄 소각을 늘릴 경우 원가가 상당폭 오를 전망"이라고 했다. 현재 시멘트 업계에서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소각하며 처리 비용을 받아 오히려 돈을 벌고 있다. 재활용 원료 부족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쪽에선 폐플라스틱을 태우며 돈을 버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정부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시멘트 업계의 열원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시멘트 업계에서 폐플라스틱을 태우며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과 오염 물질은 문제"라면서도 "폐플라스틱 대신 유연탄을 태우는 방법이 거론되지만 단가가 문제"라고 했다. 유연탄으로 원료를 대체해도 여전히 탄소와 오염 물질이 배출되는 점도 부담이다.
시멘트 업계에서 폐플라스틱 소각을 이어가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해외에서 폐플라스틱을 사와야 할 판이다. 또 다른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원재료 수급 불안을 의식해 중국 현지 공장 건설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SK케미칼은 중국 기업 슈에와 합작해 현지에서 재활용 원료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1차 가공을 거친 폐플라스틱을 수입하면 국내 탄소 감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국내에서 재활용 원료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킨지와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재활용 폐플라스틱 원료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2025년 9600만t에 달하는 반면, 공급량은 2700만t에 그칠 전망이다.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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