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천년고도 마라케시
북아프리카 모로코 중부 마라케시는 베르베르어로 ‘신의 땅’이란 뜻이다. 만년설로 덮인 아틀라스산맥 북쪽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11세기 중반 무라비트 왕조가 수도로 건설한 이후 여러 왕조에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도시 곳곳에 중세 이슬람의 번영했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높이 70m의 쿠투비아 모스크는 마라케시 어디서든 보이는 랜드마크로 도시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붉은 성벽에 둘러싸인 옛 시가지 메디나는 형형색색 건물에 미로 같은 골목으로 유명하다. 메디나 전체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98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불가리아 출신 독일어 작가인 엘리아스 카네티가 1954년 마라케시에 머물며 기행산문집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썼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낙타, 구걸한 동전을 입에 넣는 거지가 이방인의 눈엔 낯설었다. 도시는 음산했고, 사람들은 가난하고 초라했다. 하지만 “한동안 가장 신기한 구경거리”는 이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자신이었다고 했다. 모로코인들의 진솔하고 역동적인 삶의 모습에 깨달음을 얻은 뒤 카네티는 좌절과 희망에 대한 통찰을 담아낼 수 있었다. 마라케시의 풍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즈넉하고, 사람들은 활력이 넘친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만 전 세계에서 300만명이 찾지 않았을까.
모로코 알하우즈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했다. 1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진이다. 11일 현재 사망자가 21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진앙 주변 산골마을에 진흙과 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아 인명 피해가 컸다. 72시간 골든타임(한국시간 12일 오전 7시11분)은 임박했는데 수색과 구조 작업이 더뎌 인명 피해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진원지에서 북동쪽으로 70㎞ 떨어진 마라케시도 지진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10여명이 숨지고,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이 일부 파손되는 등 문화유산 피해도 잇따랐다.
국제사회가 모로코 지진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와 이란도 애도 메시지를 냈다. 한국도 하루빨리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길 바란다. 한국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예고 없는 지진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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