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기념관 설립 본격화···“대통령 입맛따라 바뀌는 역사” 비판

이홍근 기자 2023. 9. 1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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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위 “설립 모금 운동 나설 것”
정부는 460억원 예산 배정 상태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한국자유총연맹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서있다. 권도현 기자

“의도는 명확해 보입니다. 이승만 중심으로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거죠”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가 11일 기념관 설립을 위한 모금 운동 나선 것을 두고 정병욱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추진위는 이날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시민사회, 기업 등과 더불어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립 비용 중 70%는 모금으로 채우고 나머지 30%를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게 추진위의 계획이다. 정부는 이미 460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념관 설립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위가 모금 운동에 나선 것은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기로 한 지 11일 만이다. 역사학자들은 두 상징물의 설립과 철거가 윤 대통령의 뉴라이트 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뉴라이트는 일제 식민 통치의 강제성과 폭력성에 주목하기보다 일제강점기를 ‘성장’, ‘발달’ 같은 긍정적 변화로 평가한다. 이들에게 독립운동보다 중요한 것은 반공주의이고, 여러 이념적 인자가 혼재된 임시정부 수립이나 광복군·독립군의 역사적 의미보다 자유당 독재, 3·15 부정선거와 같은 중대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반공 대통령’ 이승만을 중시한다. 독립운동에 목숨 바쳐 헌신했더라도 반공주의에 부합하지 않으면 저평가하거나 배척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는 윤 대통령의 지난 광복절 경축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독립 영웅인 홍범도 장군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육사에서 흉상을 철거하는 것도 그런 역사인식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 건립된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육사 제공

정병욱 소장은 “대통령의 그간 행보를 보면 이승만 중심의 건국사를 쓰고 이를 유일하고 정통한 한국의 역사로 간주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홍 장군 흉상을 철거한 것도 이념 논쟁을 통해서 사회주의 쪽의 독립운동사를 지우고 이승만 중심으로 역사를 다시 쓰려는 의도”라며 “이승만 기념관 건립과 같은 작업들의 최종 목표는 건국사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동건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도 “홍 장군 흉상 철거, 백 장군 친일 행적 삭제, 이승만 기념관 건립 모두 뉴라이트 사관의 발현으로밖에 해석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7월 24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선엽 장군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명시한 문구를 삭제했다. 다음날인 25일, 육사는 백 장군의 6.25 전쟁 당시 공적을 기념하는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의 웹툰을 게재했다.

한 사무총장은 “곰팡이가 습도와 온도가 맞으면 피어나듯이 뉴라이트라는 포자가 곳곳에 퍼져있었는데, 윤 대통령이 거기에 적적한 습도와 온도를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가 역사적 인물의 공과를 그대로 평가하지 않고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특정인을 신격화하려는 것은 사회적인 소란만 만드는 것”이라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도, 이승만 기념관 설립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역사 논쟁에 직접 뛰어드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소장은 “국가나 정부가 역사 의식이나 교육에 강력히 개입하는 것은 파시즘적”이라며 “박근혜 정부 때보다 역사 다시 쓰기가 심한 것 같다”고 했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관계자는 “정부가 대한민국의 근간인 역사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독립운동사를 통째로 재평가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적절하지 않느냐”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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