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우원식 “과거 국방부, 홍범도 장군을 자유시 참변 피해자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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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밝힌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계획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입니다.
하지만 국방부 소속 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와 국가보훈부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과거 두 기관은 홍범도 장군을 자유시 참변을 겪은 피해자로 기록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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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밝힌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계획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입니다.
하지만 국방부 소속 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와 국가보훈부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과거 두 기관은 홍범도 장군을 자유시 참변을 겪은 피해자로 기록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국가보훈처·전쟁기념사업회 "소련 공산당의 배반으로 자유시 참변 겪어"
국가보훈부의 전신인 국가보훈처는 1987년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서술했습니다.
제4권에 있는 홍범도 장군 부분을 보면 "그 후 노령 지역으로 이동한 독립군단은 자유시를 근거로 삼고 소련군과 긴밀한 접촉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6월 소련 공산당의 배반으로 독립군은 무장이 해제되고 포로가 되는 등 소위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국방부 소속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도 '전쟁 유공 추모 대상자 공훈카드'를 작성하면서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을 당했다는 식으로 언급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공적 세부내용에는 "소련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소련군의 배신으로 자유시 참변을 겪었다. 1921년 조선 항일군의 대표로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나 독립전쟁에 소요될 무기를 원조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또 1997년에 작성한 '6월의 호국 인물 홍범도' 공적 내용에도 "1921년 자유시 참변을 겪고 무장해제를 당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 우원식 "국방부가 스스로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어"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이렇게 정리되어 있는 공훈록을 토대로 해서 과거 보수 정권들이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안을 추진하기도 했고, 또 잠수함에 홍범도함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 것"이라며 "국방부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흉상 철거 계획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며 "국군과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 전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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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준 기자 (hjni1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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