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통신] 유색인 영국 총리의 의미
다양한 민족 자연스럽게 공존
피부색에 선거 좌우되지 않아
영국 인구의 82% 이상은 백인이다. 이렇게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영국 백인들이 유색인 총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궁금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실 리시 수낵을 제외하고도 내무부, 외무부, 통상부 장관 등 내각의 고위 각료 상당수가 백인이 아니다. 총리 다음 서열 2순위인 재무부 장관도 3명의 전임자 모두 비백인이었다. 백인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마냥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타당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추측은 틀렸다. 백인우월주의와 네오나치즘에 대해 들어봤겠지만, 그런 사상들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국에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수낵과 전임 내무부 장관이었던 프리티 파텔 모두 어린 시절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았고, 파텔의 경우는 수도 없이 '파키(Paki)'라고 불렸다고 언급했다.
파키는 파키스탄인(Pakistani)에서 파생된 단어로 백인들이 남아시아인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인종차별적 호칭이다. 사실 나 또한 전형적인 백인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는 터라 남아시아인의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였지만 파키로 불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수낵이나 앞서 언급된 각료들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당시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축구팬들은 라이벌팀의 팬들을 모욕하기 위해 '○○팀의 팬이 되느니 차라리 파키가 되겠어'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요즘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경기장에서 이런 노래를 부른다면 아마 평생 축구경기장에 출입금지를 당하는 것은 물론 인종차별죄로 체포될 것이다.
유색인종의 영국 이민은 2차대전이 끝난 1940년대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쟁 동안 거의 50만명의 국민을 잃은 영국 정부는 기존 식민지, 특히 남아시아나 카리브해 국가들로부터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낵, 파텔과 같은 비백인 이민자들의 2세대들은 낯선 존재였지만 2020년대에는 비백인 이민자의 2·3세대는 물론 어쩌면 4세대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이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나라임은 분명하지만 미국과는 다르다. 영국의 식민주의는 역사에서 매우 수치스러운 페이지지만, 노예무역으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대부분의 흑인들과 달리 카리브해 지역과 남아시아의 이민자들은 스스로 영국을 선택했다.
1980년대의 불쾌하고 자극적인 파키라는 단어는 이제 영국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물론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한 극우정당들이 아직 존재하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며 그들이 내일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
수낵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수낵이 비백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보수당의 인기가 급속도로 추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영국 백인들은 그들의 총리 피부색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팀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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