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일본 100년 기업의 빛나는 혁신
반도체 소재로 발넓히며 성장
절연필름 시장서 독보적 위치
속도보다 기본에 충실한 결과
팬데믹 3년간 시총 3배 뛰어
일본 슈퍼에서 장을 보다 보면 장바구니에 아지노모토(味の素) 회사 제품을 담지 않고 끝내기가 쉽지 않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이 기업은 세계 최초 조미료부터 다양한 간편식과 냉동식품까지 온갖 종류의 식재료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 제품인 조미료의 경우 일본 내 시장점유율이 94%일 정도로 소비자 사랑이 절대적이다.
아지노모토를 롤모델로 삼아 국내에서 성장한 식품 기업이 CJ제일제당과 대상이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최근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에서 스승인 아지노모토를 넘어섰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CJ제일제당이 30조원, 아지노모토는 1조3591억엔(12조3774억원·2022년 4월~2023년 3월)으로 CJ제일제당이 3배 가까이 많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CJ제일제당이 1조6700억원, 아지노모토는 1353억엔(1조2321억원)으로 CJ제일제당의 승리다.
하지만 주가를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지노모토의 주가는 지난 3년간의 팬데믹 동안 3배나 뛰었다. 지난 8일 종가는 6067엔, 시가총액은 3조2142억엔으로 한화 30조원에 육박한다. 반면 CJ제일제당의 시가총액은 4조4786억원으로 아지노모토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서로 다른 국가의 증시 상황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기업가치 차이는 사실 의외다. 그동안 CJ제일제당이 세계 소비자 입맛을 잡기 위해 다양한 투자를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두 회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들이 보여준 미래 모습이다. CJ제일제당은 식품회사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지노모토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발군의 경쟁력을 보여준 것이다.
아지노모토의 미래사업은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 회로에 간섭 없이 전류가 흐르려면 절연 물체가 필요한데, 여기에 필요한 마이크로 절연 필름을 '아지노모토 빌드업 필름(ABF)'이라는 이름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 제품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90%를 넘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필름 개발의 핵심 기술은 조미료 개발 과정에서 착안됐다. 아지노모토는 MSG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활용해 단열성이 높은 소재를 만들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1999년에 제품을 선보였고, 이번에 팬데믹을 맞아 ABF 생산이 부족해서 반도체 공급이 늦어질 정도로 절대적인 경쟁력을 보여준 것이다.
잃어버린 20~30년을 지나온 일본 경제를 보면서 만만하게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최근 엔저로 우리의 구매력이 높아진 것도 여기에 한몫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는 일본의 도요타이고, 도쿄일렉트론과 캐논도키의 장비 없이는 우리가 자랑하는 반도체와 OLED 패널 생산은 불가능하다.
일본에는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수십 년간 기술 하나를 갈고닦아 온 기업이 많다. 최근 30년간 일본 경제를 든든하게 버텨준 버팀목이 이들이다. '속도'를 앞세워 성공한 대한민국 경제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일본과 경쟁하려면 기초를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승훈 도쿄 특파원 thoth@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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