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네이처 “남성 Y염색체, 처음으로 완전 해독”] 인간 게놈 지도 완성 10년 만의 성과…질병 성별 차이 이해 기대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의 유전정보가 처음으로 완전히 해독됐다. 염색체는 세포핵에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Y염색체는 정보가 중복된 곳이 많아 해독이 어려웠다. 이번에 Y염색체 지도가 완성됨에 따라 남성이 암에 더 잘 걸리는 것처럼 질병의 성별 차이를 이해하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8월 24일(현지시각) 인간의 Y염색체를 완전 해독한 연구 논문 두 편을 게재했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의 애덤 필리피(Adam Phillippy) 박사와 이아랑 박사 연구진은 유럽계 남성 한 명의 Y염색체를 구성하는 염기 6246만29쌍을 완전 해독한 결과를 발표했다. 동시에 미국 잭슨의학연구소의 찰스 리(Charles Lee·54·한국명 이장철) 박사 연구진은 21개 인구 집단에 속하는 남성 43명의 Y염색체를 해독해 비교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반복 부위 많은 Y염색체, 게놈 해독 어려워
염색체는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 가닥들이 실패 역할을 하는 단백질에 감겨 있는 형태다. 95%가 물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염색은 잘된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인간은 23가지 염색체 쌍을 갖고 있다. 일반 염색체 22가지와 성염색체 한 가지다. 성염색체는 여성은 XX염색체, 남성은 XY염색체를 갖고 있다. Y염색체가 남성을 좌우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2003년 인간의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게놈은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좌우하는 DNA 유전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게놈 해독은 DNA를 구성하는 A·G·C·T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를 밝히는 일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당시 공개된 인간 게놈 지도는 완성본이 아니었다. 남성을 좌우하는 Y염색체는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Y염색체는 염색체 중에 가장 작다. 단백질을 합성하는 설계도인 유전자도 그만큼 적다. 그렇지만 염기가 반복된 부위가 워낙 많아 해독이 쉽지 않았다.
이는 게놈 해독 기술의 한계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염색체에 있는 DNA를 증폭한 다음 잘게 잘랐다. 그래야 해독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후 끝부분이 중복되는 것을 이어 붙여 전체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Y염색체는 중복 부위가 많아 자르면 어디에 속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번에 Y염색체가 완전히 해독된 것은 기술 발전 덕분이다. 영국 옥스퍼드 나노포어(Oxford Nanopore)는 DNA 한 가닥을 작은 구멍으로 통과시키면서 각각의 염기가 가진 전기적 성질 차이로 바로 염기 서열을 알아낸 결과를 발표했다. 나노포어 방식이라면 게놈 해독을 위해 DNA를 합성, 증폭할 필요가 없다.
지난 2021년 미국 산타 바버라 캘리포니아대의 카렌 미가(Karen Miga) 교수 연구진은 나노포어의 기술을 이용해 그동안 해독하지 못했던 부분을 밝혀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여성의 게놈을 해독해 Y염색체는 여전히 빠져 있었다. 이번에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유럽계 남성의 게놈을 나노포어 기술로 해독해 Y지도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남성 유전자 밝히면 질병 연구에 도움
이번 연구에서 Y염색체에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가 106개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기존 게놈 지도에서 밝힌 것보다 41개 더 많은 수치다. 하지만 모두 정자 생산에 관여하는 TSPY라는 한 유전자가 중복된 것이었다. 새로운 유전자가 나오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찰스 리 박사 연구진은 아프리카계 21명을 포함해 다양한 인구 집단에 속하는 남성 43명의 Y염색체를 동시에 해독했다. 다양한 인구 집단의 Y염색체를 비교할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실제로 TSPY 유전자 숫자가 사람마다 23~39개로 달랐다. 과학자들은 TSPY 유전자의 수나 위치에 따라 개인마다 정자 생산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추정한다.
Y염색체의 유전자 기능이 생식능력뿐 아니라 남성의 전반적인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Y염색체가 줄어든다. 70세 남성의 약 40%, 93세의 57%가 일부 백혈구에서 Y염색체가 없어진다. Y염색체가 줄면 심장 질환과 퇴행성 신경 질환, 암에 걸리기 쉽다.
과학자들은 Y염색체가 성별에 따라 암에 걸리는 형태가 다른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6월 ‘네이처’는 대장암과 방광암이 남성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이유가 Y염색체에 있음을 밝힌 연구 논문 2편을 발표했다. ‘네이처’ 논문은 남성 방광암 환자의 Y염색체가 줄어들면 암세포가 면역체계를 잘 피해 더 위험해진다고 밝혔다. 다른 논문은 생쥐 실험으로 Y염색체에 있는 특정 유전자가 대장암이 몸 전체로 퍼지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韓 과학자들 Y염색체 해독 큰 역할
이번 Y염색체 최초 해독에는 한국인 과학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잭슨의학연구소 논문의 대표 저자인 찰스 리 박사는 캐나다계 한국인 과학자다. 그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듬해 캐나다로 이민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의대 교수를 거쳤다. 2008년 39세 나이로 최연소 호암상 수상자가 됐으며, 2012년과 2015년 각각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초빙 석좌교수가 됐다.
리 박사는 한국인 노벨상 수상 후보로 꼽힌 석학이다. 국제 학술정보 서비스업체인 톰슨 로이터(현 클래리베이트)는 지난 2014년 유룡 KAIST 화학과 특훈교수와 찰스 리 서울대 의대 초빙 석좌교수를 각각 노벨 화학상과 생리의학상 후보자 명단에 올렸다. 한국인 과학자가 톰슨 로이터의 노벨상 수상 후보자에 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리 박사는 2004년 두 쌍이어야 정상인 사람의 유전자가 세 쌍 이상이거나 하나 또는 아예 없는 이른바 ‘유전자 복제수 변이’를 처음 밝힌 공로로 노벨상 수상 후보에 선정됐다.
리 박사는 “탄수화물을 거의 안 먹는 이누이트인보다 쌀이 주식인 한국인이 탄수화물 소화를 유도하는 아밀라아제를 만드는 유전자가 더 많은 것이 복제수 변이의 대표적인 예”라며 “에이즈 면역 유전자나 암 면역 유전자의 수도 사람마다 달라 맞춤형 진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 논문의 제1 저자도 한국인 과학자인 이아랑 박사다. 이 박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부터 국립인간게놈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번 Y염색체 해독에서 정자 생산에 관여하는 무정자증 인자(AZF) 유전자가 거꾸로 읽어도 정보가 같은 이른바 회문(回文) 구조인 점에 주목했다. 이 박사는 “회문 구조는 DNA의 고리를 만들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때때로 이러한 고리가 실수로 잘려서 게놈에 결실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무정자증 인자가 결실되면 정자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생식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박사는 “이제 연구자들은 완전한 Y염색체 염기 서열을 통해 이러한 결실과 정자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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