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48> 세계 최강 한국 여자 골프의 추락 ②] 작은 인구, 스몰 마켓을 극복한 네덜란드 축구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2023. 9.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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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에드손 알바레스가 FC유니온 베를린 진영을 향해 헤딩으로 공을 보내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한국 여자 골프가 적어도 50년은 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이 국내 골프계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퍼진 적이 있었다. 이들은 유소년 골프와 올림픽 같은 주요 국제 대회 현장을 잘 알던 인물들이었다. 2016년 박인비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1주일이 멀다 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던 201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당시 이들의 논리는 단순하고 솔직했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이른 나이에 프로 선수처럼 훈련하는 선수 숫자가 많은 곳이 없다는 게 논지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초·중·고 시절을 거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이르기까지 경쟁의 치열함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한국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필살기로 다져진 여전사라면, 다른 나라 선수들은 취미 삼아 하는 골프이니 체격과 비거리 차이도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불씨가 돼 세계 곳곳의 어린 선수들이 골프에 뛰어들면서 ‘한국 여자 골프 50년 최강론’은 몇 년 만에 무너졌다. 2020 도쿄 올림픽 노메달에 이어 LPGA투어 메이저 대회 우승은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한국의 최고 수출 상품’이라던 외신 찬사가 무색해졌다.

2022년 12월 9일 카타르 루사일 경기장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8강전 네덜란드 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네덜란드 팬이 국기 모양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웃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작고 강한’ 축구 리그. 네덜란드를 찾아본다

1998년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이후 KLPGA투어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성장했다. 코로나19 시기부터 국내에 안주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며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외국 선수들이 초청 선수로 와서 우승컵을 가져갈 만큼 호락호락한 곳도 아니다. “세계 넘버원 KLPGA∼, 세계를 향해∼.”로 시작하는 로고송처럼 KLPGA투어가 ‘그들만의 갈라파고스’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투어로 거듭나는 길은 무엇일까.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영국 드몽포트대(DMU)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한 스포츠 역사와 문화 관련 전문가다. 그와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아낸 세계 유수 리그의 사례를 찾아본다.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2002년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의 모국 네덜란드는 작고 강한 축구 리그로 유명한 곳이다.

전 세계 프로 스포츠 리그의 목표는 대체로 두 가지로 모아진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유망주 배출과 리그의 수익성 향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서로 자주 연결된다. 좋은 유소년 선수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리그의 상업적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유소년 육성이 최고의 마케팅이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 스포츠 리그가 유소년 육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이 최상의 활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늘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많은 유망주 풀(talent pool)을 확보할 수 있는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네덜란드 축구는 하나의 모범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인구 17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월드컵 3회 준우승, 유럽축구선수권대회(EURO) 1회 우승을 기록한 대표적인 축구 강소국(强小國)이다. 네덜란드의 축구 신화는 1970년대 요한 크루이프를 앞세운 ‘토털 사커’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 토털 사커는 공격과 수비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의 전천후 능력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같은 전술적 유연성은 모든 선수가 창의적인 전진 패스를 통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졌다.

네덜란드 축구에서 진짜 배워야 할 부분은 또 다른 의미의 ‘토털 사커’다. 네덜란드는 사실상 전 국민이 클럽에서 축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미 1978년 네덜란드 왕립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 가운데 무려 20만 명이 유소년 선수였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 전체 인구의 약 7%가 클럽 소속으로 축구를 즐겼으며 유소년 선수 숫자도 전체 인구의 약 1.4%에 달했다는 의미다. 현재 네덜란드 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120만 명이며 유소년 선수 숫자는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네덜란드 어린아이들에겐 ‘어느 클럽을 응원하냐’는 것보다 ‘어느 클럽에서 뛰느냐’고 질문해야 한다는 농담 섞인 얘기도 회자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실제로 유소년 축구 클럽에서 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7000개 넘는 축구장, 네덜란드 인프라 구축 배워야

이처럼 많은 네덜란드 사람이 클럽에서 축구를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축구 인프라 구축이었다. 19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제압했던 서독의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는 훗날 헬리콥터를 타고 네덜란드 상공을 지나면서 네덜란드가 왜 축구 강국이 됐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당시 베켄바워는 서독에 비해 작은 국토의 네덜란드에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축구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네덜란드 왕립축구협회와 축구 클럽들이 축구장 건설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7000개가 넘는 축구장이 있다.

신체 변화와 축구 기량의 성장 속도가 급격하게 달라지는 13~16세 선수들이 뛰는 네덜란드 유소년 클럽에서는 6주마다 선수들의 신체 연령을 측정한다. 신체 연령 측정의 주요 지표로는 키, 앉은키, 체중, 발 사이즈와 유연성 테스트가 있다. 이렇게 자주 신체 연령을 측정하는 이유는 신체 성장이 빠른 선수를 상위 연령 팀에 승격시켜 훈련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물론 유소년 선수가 동료들보다 빨리 상위 연령 팀에 승격하기 위해서는 신체 연령 외에, 축구 기술 숙련도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이 제도는 최상의 신체 조건과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유소년 선수를 일찍 추려내 상위 연령대 선수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축구 버전의 월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축구는 이처럼 적은 인구와 협소한 국토 면적이라는 약점을 여러 가지 제도로 극복해 왔다. 네덜란드 리그는 지난 1980년대부터 자국 클럽이 다른 유럽 프로 축구 클럽보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 규정과 이들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남미와 아프리카에 있는 유망주를 값싼 가격에 영입한 뒤 네덜란드 리그에서 숙련 과정을 거쳐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프로 축구 빅 리그 클럽에 되팔아 두둑한 이적료를 챙기는 축구 중계 무역에서도 네덜란드는 최고의 나라가 됐다.

협소한 눈앞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고 더 큰 미래를 생각하고 움직일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네덜란드 축구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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