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67> 마크 파워(Mark Power) ‘해운 기상 예보(The Shipping Forecast)’] 영국의 리드미컬한 바다와 날씨를 담은 사진 여정
마크 파워(Mark Power)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수행하는 작가다. 그는 영국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대해 생각하다 해운 기상 예보(Shipping Forecast)를 떠올리게 되었다.
해운 기상 예보는 BBC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영국 제도 연안 해역의 일기예보다. 31개 해역의 온화한 날씨부터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다양한 날씨에 관한 정보가 라디오 파장을 통해 영국 가정에 전달됐다. 많은 종류의 콘텐츠가 경쟁하는 시대가 됐지만, 이 해운 기상 예보는 거의 100년에 걸쳐 변함없이 하루에 네 번씩 방송되면서 영국인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 레스터(Leicester)의 주택에서 자란 마크 파워는 부모가 자주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기상 예보를 듣곤 했다. 어느 날 그는 해안 도시 그레이트 야머스(Great Yarmouth)의 한 가게에서 영국 해안 지도가 그려진 수건을 봤는데, 그는 수건에 적힌 여러 지역의 이름이 이상하게도 친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장소와 날씨를 전하는 일기예보는 그도 모르는 새 해안 지역에 대한 정신적 이미지를 그 내면에 형성시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해운 기상 예보는 물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 바다에 있거나 바다에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폭풍우에 대해 경고한다. 하지만 적어도 영국에 있는 우리 대다수에게 해운 기상 예보의 이상하고 리드미컬한 언어는 바람과 파도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섬나라 이미지를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낭만적이고 묘하게 위안이 된다.”
마크 파워는 해운 기상 예보의 언어가 매우 아름답고 시적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바람) 5 또는 7. 비가 온 후 소나기 내림”이라든지, “북동쪽에서 3 또는 4, 5로 증가, 때때로 6. 처음에는 이슬비, 곳곳에 낀 안개로 보통 또는 나쁨, 양호해짐” 등 예보에 등장하는 다양한 구어적 표현, 시적인 표현, 때때로 난해한 언어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을지, 날씨를 시각적 은유를 통해 보여줄 수는 없을지 그는 고민했다.
‘해운 기상 예보(The Shipping Forecast·2022)’는 마크 파워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간 해운 기상 예보를 표현하기 위해, 영국 제도 연안의 31개 해역을 촬영하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는 흑백필름이 든 카메라를 들고 캠퍼밴을 타고 와이트(Wight), 험버(Humber), 플리머스(Plymouth), 헤브리디스(Hebrides) 등 31개 구역 모두를 여행했다.
31개 해역을 표기한 지도로 시작하는 이 책은 모든 해역을 고루 담아 다양한 장소를 보여준다. 기상 예보가 매일 변함없이 방송되는 것처럼, 그가 담은 것은 거창한 사건이기보다는 일상의 장면들이다. 또한 특정 인물이나 장소를 깊숙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사전 조사 없이 지역을 누비며 마주한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잔잔하고 어두운 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언덕 꼭대기에 모여든 사람들, 얕은 바다에서 놀고 있는 소년들, 텅 빈 산책로, 파도가 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검은 구름 아래에서 당나귀를 타고 있는 소녀 등 해안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담겼다. 바다와 하늘은 해운 기상 예보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사진에도 곧잘 등장하는 수평선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차분하게 전달한다.
마크 파워의 사진은 그가 의도한 것이 사진을 통해 날씨에 대한 명료한 시각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날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강풍, 햇빛, 소나기 등이 남기는 흔적이다. 바람에 날리는 나무는 강풍을, 뚜렷한 그림자는 내리쬐었을 햇빛을, 창문에 맺힌 빗자국은 소나기를 짐작하게 한다.
단, 각 사진에는 촬영 장소 및 촬영 날짜와 더불어 촬영 당일 오전 6시 해운 기상 예보가 기재돼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과 텍스트가 일치하면 사진은 설명적이 되고, 그렇지 않을 때 사진은 암시적이 된다. ‘해운 기상 예보’의 사진은 후자에 가깝다. 독자는 텍스트를 통해 날씨를 짐작하며 사진을 보게 되지만, 텍스트는 단서일 뿐 사진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마크 파워는 이 작업을 통해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 주로 잡지와 신문 사진작가로 일했던 마크 파워는 주어진 텍스트를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을 찍는 일을 했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 사진으로 명료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묘사된 상황이 은유적이고 혼란스러울 때 사진이 더 흥미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 들은 해운 기상 예보를 토대로 상상한 장소들을 방문한 마크 파워. 그는 이 여정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도착하면 가지고 있던 상상의 풍경이 금세 사라진다고 말한다. 상상과 허구가 현실과 사실로 빠르게 대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그 장소에서 바로 최고의 사진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사진이 단순히 눈앞의 현실을 기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상상과 현실, 기대와 실망, 허구와 사실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발견한 새로운 의미와 통찰이 ‘해운 기상 예보’에 시각화돼 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