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손해사정법인 12곳 순익 반토막···경영난에 인력이탈까지 첩첩산중
임직원 월급까지 깎으면서 버텨
작년 9조 순익 올린 보험사와 대조
손해 사정 업무처리 확 늘었지만
보수료 해마다 줄어···"돈 안돼" 팽배
위탁 보수료 선정방식부터 바꿔야 상>
보험사들로부터 보험금 산정 업무를 위탁받아 대행하는 손해사정법인들의 경영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들의 실적 악화는 손해사정 업무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두 차례에 걸쳐 손사법인 업계의 현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매출 100억 원 이상의 손사법인(보험사 자회사 제외) 12곳(파란·국제·다스카·에이원·탑·해성·리더스·TSA·KM·세종·태양·유윌비)의 당기순이익은 총 36억 1544만 원으로 전년 말(82억 7789만 원) 대비 절반 이상 급감했다. 12개 업체 중 단 4곳만이 전년 대비 순이익이 증가했고 8개 업체는 순이익이 감소했다.
한 손사법인 대표는 “적자가 발생하면 위탁 업무 선정 대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손사법인들은 임원들의 급여를 줄이거나 대표 자산을 팔아 채워넣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겉으로 보기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는 설립된 지 20년이 된 D 손사법인이 폐업해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해마다 50억 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한 이 회사는 직원 수가 50명 안팎에 달했지만 실적 악화가 계속되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최근 3년간 K사·B사·C사의 경우 경영난에 따른 매각 등을 통해 대표가 바뀌었으며 또 다른 D사와 S사·T사 등도 현재 폐업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사정 업계의 한 관계자는 “폐업한 D사는 손해사정 업계에서 규모도 있고 업력도 긴 데다 꽤 견실했던 업체였다”며 “상당수 다른 손사법인들도 임직원의 월급을 깎고 겨우겨우 적자를 면하면서 버텨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손해사정 업무는 보험 사고로 발생한 손해액을 결정하고 보험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관련 업무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위해 손해사정 업무를 할 때 보험사가 손해사정사를 고용하거나 외부 업체에 위탁함으로써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위탁 대상은 크게 보험사 자회사 손사법인과 비자회사 손사법인, 개인 손해사정사로 나뉜다.
손사법인의 경영난은 국내 보험사가 지난해 9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둔 것과는 대조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54개 보험회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9조 1801억 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도 보험사들은 새로운 회계 제도가 적용된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지난해 전체 순이익과 맞먹는 실적(9조 1440억 원)을 기록했다.
손사법인들은 보험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위탁 보수료를 낮춰 중소 손사법인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비자회사 손사법인의 손해사정 업무 처리 건수는 3735만 건으로 전년(3472만 건)보다 263만 건 정도 늘었다. 앞선 12개 손사법인의 지난해 매출액도 같은 기간 3104억 원에서 3293억 원으로 190억 원(6.08%)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건당 평균 위탁 보수료는 낮아지고 있다. 비자회사 중소 손사법인의 건당 보수료는 2020년 1만 8040원, 2021년 1만 5590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1만 2730원 정도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반면 보험사 자회사 손사법인의 건당 위탁 보수료는 2020년 3만 2560원에서 지난해 4만 620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 손사법인 관계자는 “위탁 업무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많고 비용과 노력이 적지 않게 드는 업무를 받아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사법인들은 당장은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보험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위탁 보수료 산정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사법인의 경영난이 악화되면 능력 있는 직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동시에 직원 교육 등에 투자할 수 없어 소비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도 중소 손사법인은 보험사에 비해 ‘을’의 입장인데 경영난이 심해지면 보험사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져 손해사정 업무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손사법인 관계자는 “지금도 우수 조사원 확보는커녕 오히려 인력이 유출되면서 조사 기간도 길어지고 업무의 질도 악화돼 민원이 늘고 있다”며 “중소 손사법인이 무너지고 보험사 자회사 손사법인만 남게 되면 보험 산업의 생태계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성호 기자 junpar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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