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저하에 종이책·손글씨 늘린다는 ‘이 나라’
국내에서 ‘심심한 사과’ 등의 표현으로 수차례 문해력 저하 논란이 불거졌던 가운데, 스웨덴 역시 국민 문해력 저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원인으로 지나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지목하며, 종이책과 손글씨 등 전통적 교육 방식을 재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1일(현지 시각)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스웨덴 정부는 각 학교에 배치할 도서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6억8500만 크로나(약 823억원)를 투입하고, 내년과 그 이듬해에도 연간 5억 크로나(약 600억원)씩을 추가 배정할 계획이다.
이런 결정은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학습 방식으로 인해 문해력 등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지난달 성명에서 “디지털 도구가 학생의 학습 능력을 향상하기보단 오히려 저해한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며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은 무료 디지털 소스에서 지식을 습득하기보단 인쇄된 교과서와 교사의 전문 지식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로타 에드홀름 교육부 장관도 지난 3월 “스웨덴 학생들 학습에는 ‘실제 책’이 중요하다”며 유치원에서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던 기존 당국 방침을 뒤집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6세 미만 아동에 대한 디지털 학습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이라고도 전했다.
초등학교 4학년생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에 따르면, 2016∼2021년 스웨덴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떨어지는 추세였다. 특히 2021년 평가에서는 스웨덴 초등학교 4학년생 평균 점수가 544점으로, 2016년 555점에 비해 11점 떨어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전통적 교육 방식 재도입 흐름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톡홀름 유르가르스콜란 초등학교에서 3학년 교사를 맡은 카타리나 브라넬리우스는 “(10세 미만 학생들에겐) 태블릿에 글을 쓰도록 하기 전에 손 글씨를 쓰도록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전자기기 활용이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확언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호주 멜버른의 모나쉬 대학 교육학 교수 닐 셀윈은 “(문해력 저하 원인을 전자기기 활용에서 찾는 건) 보수적 정치인들에게 인기 있는 움직임”이라며 “스웨덴 정부가 ‘기술이 학습을 증진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기술과 관련해 교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적 검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해력 저하에 위기감을 느끼고 대책 마련에 나선 건 스웨덴뿐만이 아니다. 미국 뉴욕시는 지난달 아이들의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해 도서관에 새 책 약 1만5000권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2019년 미국의학협회 소아과학회지에 실린 미 신시내티아동병원 의료센터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오래 사용한 아이일수록 문해력 검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심심한 사과’ 표현으로 문해력 저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던 바 있다. 한 카페에서 사과문에 ‘심심(甚深)한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가, 일부 네티즌이 이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의 동음이의어로 잘못 이해하고 비판을 쏟아내면서다. 이후 ‘금일(今日,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날)’을 금요일로, ‘고지식’을 높은(高) 지식으로 잘못 이해했다는 사연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관련 논란에 불을 지폈다. 결국 ‘심심한 사과’에서 불거진 문해력 저하 사안은 국무회의에서까지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한양대 국어교육과 조병영 교수는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현대인들은) 영상으로 정보를 취하고 소통하는 세상이 돼서 글을 읽을 일이 없다”며 “긴 글 읽는 걸 어려워한다”고 했다. 이어 “요즘 글을 읽는 경향성 중 하나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 것,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것”이라며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릴 수 있고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을 항상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 어떻게 글을 읽고 쓰는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나아가야 문해력이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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