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외교관저와 파이프오르간…미리보는 '정동야행'

윤보람 2023. 9. 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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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3∼14일 영국대사관 등 정동길 역사시설 33곳 야간개방
영국대사관저 소개하는 주한영국대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가 11일 오후 '정동야행 사전 프레스투어' 참가자들에게 영국대사관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3.9.11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덕수궁 돌담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유럽식 정원을 품은 멋들어진 서양식 건축물이 숨어 있었다. 평소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주한 영국대사관이다.

대사관에서 나와 돌담길을 따라 걷다 들어선 곳은 덕수궁 중명전. 을사늑약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이라기엔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길을 건너자 일제 치하 시절 민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정기를 살아 숨 쉬게 한 역사적 공간이 됐던 정동제일교회를 만날 수 있었다.

시원한 가을 밤바람을 맞으며 이 같은 '근대 문화유산 1번지' 서울 중구 정동의 역사시설을 둘러볼 수 있는 '정동야행' 행사가 내달 13∼14일 열린다. 취재진은 11일 중구청의 안내를 받아 행사 때 야간 개방되는 일부 시설을 미리 둘러봤다.

기와지붕으로 된 철문을 통과하고 영국대사관에 들어서자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어서 오세요"란 인사말로 취재진을 맞았다. 김길성 중구청장도 함께했다.

정문을 지나니 사무동 건물이 나왔다. 한국과 외교 업무가 늘어나며 1992년 준공한 건물로, 당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가 준공식에 참석했다.

건물 앞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영국 국기와 함께 게양돼있었다. 크룩스 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부터 계속 걸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한반도에 근무한 최초의 영국 외교관 윌리엄 애스턴을 기념하는 '애스턴 홀'이 나왔다. 홀 내부에는 1797년 한반도에 도착한 첫 번째 영국인 윌리엄 브로턴 대위의 이름을 딴 '브로턴 바'가 자리 잡았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이 곳에서 크룩스 대사는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영국 위스키가 가득하다. 저도 마시려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웃어 보였다.

영국대사관저 소개하는 주한영국대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가 11일 오후 '정동야행 사전 프레스투어' 참가자들에게 영국대사관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3.9.11 pdj6635@yna.co.kr

'2호 관저'로 불리는 사무동 뒤 벽돌 건물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영국대사 관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관 관저로 건물 상부에 준공 연도인 '1890'이 적혀있다.

관저 앞 정원에는 영국을 상징하는 장미와 한국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있었다.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국빈 방문 당시 심은 벚나무도 한 편에 자리했다.

영국 대사관은 우리나라 서양 건축물의 표본이자 정동 근대 건축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크룩스 대사도 "이렇게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같은 기능을 유지하는 건물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오랜 시간 이 관저를 유지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관저 내부로 들어서자 복도 왼편엔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대관식 직전 교체됐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는 위층으로 옮겨 걸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을 비롯해 곳곳에 놓인 다양한 미술품은 눈을 즐겁게 했다. 만찬장에는 크룩스 대사가 좋아한다는 탈북인 오성철 작가의 '실체와 그림자'란 작품이 걸려있다. 크룩스 대사는 2018∼2021년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지내 한반도에 정통한 '지한파' 외교관으로 통한다.

덕수궁 중명전 [촬영 윤보람]

대사관 관람에 이어 중구 문화해설사와 함께 덕수궁 중명전과 정동제일교회를 둘러봤다.

중명전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다. 고종황제가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1907년 강제 퇴위 전까지 머물렀다.

정동제일교회는 선교사 아펜젤러가 1898년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 건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결혼식과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열렸다.

교회 내 벧엘예배당에서는 한국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도 만나볼 수 있었다.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모금 활동을 통해 1918년 설치된 이 파이프 오르간은 개화기 많은 음악가를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 오르간 뒤편 숨겨진 공간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선언서를 몰래 등사했다고 한다.

올해 정동야행에서는 공공기관, 문화재, 대사관, 종교시설 등 총 33개 시설이 야간에 관람객을 맞는다.

덕수궁 고궁음악회, 벧엘예배당 파이프오르간 음악회 등 문화행사가 12곳에서 열리고 역사 해설을 곁들인 골목길 투어, 야경 투어 등이 진행된다.

2018년 이후 중구가 5년 만에 주최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서울시가 운영하다 정동협의체 등의 요청으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구청이 맡게 됐다.

대부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나 영국대사관, 캐나다대사관의 경우 관람 인원이 제한돼 25일부터 사전 신청을 받는다. 중구는 내달 중 구체적인 행사 일정을 별도 안내할 계획이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의 파이프오르간 [촬영 윤보람]

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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