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마블과 다른 ‘한국형’ 히어로의 재정의[스경연예연구소]

하경헌 기자 2023. 9. 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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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 포스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지난달 9일 공개된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의 열기가 거세다. ‘무빙’은 OTT 서비스 종합 인기 순위 차트 키노라이츠가 집계한 주간 랭킹에서 4주째 1위에 올랐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거대한 위험에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을 표방한다. 지금까지 할리우드의 히어로물에만 익숙했던 국내 시청자들에게 ‘한국형’ 히어로물의 전형을 제시한다.

이 ‘한국형’이라는 말은, 표현에 따라서는 굉장히 다의적인 의미가 있다. 한때는 할리우드보다 턱없이 모자란 자본으로 ‘없는 돈에도 그나마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표현을 ‘한국형’으로 달리 표현할 때도 있었고, 한국 고유의 정서를 위해 과거의 유산을 쉼 없이 소환해 표현하는 일을 ‘한국형’으로도 불렀다.

하지만 ‘무빙’은 이 ‘한국형’이라는 말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바로 화려하지도,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다분히 대한민국을 투영할 만한 히어로물의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빙’의 흥행은 한국에서 히어로물이 색다르게 움틀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의 한 장면.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무빙’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모두 이 능력을 숨기고 산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을 발현하게 하는 것은 외부의 침공도, 존재론적인 고민도 아니다. 바로 한국 사회가, 한국 사회만이 가진 여러 시스템적인 부조리다.

예를 들어 자가재생능력을 지닌 장주원(류승룡)의 딸 장희수(고윤정)는 능력을 숨기고 산다. 하지만 같은 반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의 상황을 지나칠 수 없어 결국 능력을 들키고 만다. 결국 희수는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돼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역시 전기능력을 지닌 전계도(차태현)는 몸에서 일어나는 전기를 제어하지 못해 사회적응에 애를 먹는다. 그리고 청년실업의 긴 터널로 밀려들어 간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의 상황은 결국 전기능력을 외부에 노출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괴력의 사나이 이재만(김성균)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캐릭터지만 그의 괴력이 노출된 것은 청계천 복원사업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민낯 때문이었다. 이들 능력자들은 또 취하봬 국가의 공동선에 이바지한다는 명목으로 북한 등 해외의 스파이 활동에 투입된다.

지금까지 마블스튜디오를 비롯한 많은 히어로물들은 능력의 발현 계기가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이거나 외계나 외세의 침공 등 내외부적인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이 계기 역시 판타지 장르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특이한 상황이라 서사에 대한 몰입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빙’은 한국사를 훑었을 때 기억하기 싫은, 또는 불편한 기억들을 자꾸 상기시키며 이를 히어로물과 엮는다. 작품의 휴머니즘과 별개로, 유독 한국인이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도처에 숨어있는 셈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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