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개선책 발표 뒤에도 이어지는 죽음···빈틈은 메울 수 없을까
현장에선 “복지제도 질적 개선 필요”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여 만에 전북 전주에서 생활고를 겪던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로 추정되는 어린 아이도 함께 있었는데 ‘출생미신고’ 아동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책을 발표했는데도 ‘빈틈’ 속에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 현장에서는 복지제도의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전주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A씨(41)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아니었으나 2021년 5월부터 건강보험료 미납·가스 끊김·통신료 체납 등을 이유로 위기가구 대상 명단에 포함됐다. 사회보장정보원은 보통 격월로 지자체에 위기가구 명단을 내려보내는데 A씨는 그해 5~11월까지는 명단에 들어 있었고 지자체에서 4차례 상담한 기록도 확인됐다.
A씨는 2022년 명단에서 빠졌다가 올해 7월 다시 포함됐다. 전주시는 지난달 두 차례 전화 등으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회보장정보원 관계자는 “현재 위기가구 발굴을 위해 39종의 정보를 취합하고 있지만 한두 가지로는 (그런 가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방문조사의 우선대상이 되긴 어렵다고 한다”고 전했다.
전주완산경찰서는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A씨를 부검한 결과 사인은 ‘동맥경화’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A씨 곁에서 발견된 아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의식을 되찾았다. 이 아동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2015~2022년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에서도 확인되지 않아 ‘병원 밖 출산 아동’일 가능성이 크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으니 아동수당이나 한부모 가구 지원 등 양육지원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생활고와 투병 끝에 숨진 뒤 뒤늦게 발견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11월엔 서울 서대문구에서 생활고를 겪던 모녀가 사망한 후 발견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계기로 지난해 11월24일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위기가구 포착 정보는 39종에서 올해 12월부터 44종으로 확대하고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른 경우에도 사실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사회복지 공무원은 증원하지 못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동주민센터부터 가족센터, 사회복지관 등 다양한 기관들이 있는데 대부분 동일지역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니 어떤 사람은 중복된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필요한 도움을 못 받고 있다”면서 “정말로 취약한 계층은 복지제도를 신청할 의지나 정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복지사업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우리아이 희망네트워크 지원사업’처럼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돼 사각지대 발굴하고 지원한 사업이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서 “지역사회 중심의 공동체 회복 사업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기가구 포착 정보 종수를 늘리면서 대상군이 많아지고 고독사 예방사업과 같은 새로운 복지사업이 늘어나면서 현장에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면서 “통합사례관리도 지자체별로 차이가 난다. 위기가구 포착 정보 수를 늘리는 게 정말 좋기만 한 것인지 재검도 필요하고, 사례관리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 교수는 “기존의 노인·장애인·아동 등 기존 복지정책에 비해서 한부모 가구나 중장년 및 청년 고립가구, 경증 정신질환 환자 등에 대한 복지정책은 급여나 서비스 수준이 낮아서 당사자들이 정책의 효용성을 느끼지 못해 신청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면서 “당사자들이 낙인을 우려해 기피하기도 하고, 위기의 순간에 제때 지원이 되지 않아 경제적·심리적 위기가 심화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결국 복지제도의 질적 제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가난을 덜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1월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발굴 기술이 아니라 빈곤 해결이 중요하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 단체는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조건, 가난과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까다로운 신청조건, 노숙인 등을 배제하는 주소지 기반 복지정책 등을 비판했다.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둔 출생통보제가 최근 국회를 통과했지만 ‘병원 밖 출산’ 아동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 위기 임신부가 병원에서 익명을 전제로 출산하도록 돕는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도 완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혜련 교수는 “위기 임산부들이 임신 초기부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상담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원이 보장되면 양육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고 그중에서도 임신중단이 최선인 경우, 입양이 최선인 경우가 있다면 그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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