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원평가 폐지도 열려있어" 깜짝 발표…멍든 교심 달랠까
지난해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 이후에도 존치 방침
폐지 대신 대수술 택할 수도…교직단체 "폐지가 답"
[세종=뉴시스]김정현 김경록 기자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올해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의 시행 유예를 검토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현장 교사들의 의견에 따라 폐지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가 '교원평가는 필요하다'는 그 동안의 입장을 바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잇단 사망과 추락한 교권침해 속 멍든 교심(敎心)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총리는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권보호 4대 입법 통과 촉구' 호소문을 발표하며 예고에 없던 교원평가 시행 유예 검토 및 제도 재설계 방침을 밝혔다.
그는 "(교원평가 중) 서술형 평가에 대해서는 교사들의 마음에 상당히 상처를 준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 주 교사들과의 대화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 부총리는 서술형 평가 폐지도 검토하는지 묻자 "이번에 확실히 개선할 의지를 갖고 임하겠다"며 "교원평가에 대한 여러 불만들이 많고 폐지까지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 전부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더 나아가 교원평가 제도 폐지까지 검토하는지 묻자, "질문한 그런 것들이 다 오픈돼 있다"며 "아마 금요일(15일)이 될 것 같은데 교사들과 대화를 충분히 하면서 구체적 방향을 잡아 나가겠다"고 했다.
교원평가는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 등에 근거해 능력이 좋은 교사를 뽑아 재교육과 연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교사의 능력을 진단하는 평가다. 교원 상호 간의 평가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 등의 방식이다.
교원평가는 진보 성향 교직단체와 보수 성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모두 반대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 조사가 교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상 평가의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이 교직단체의 주장이다.
지난 5월 교총이 유·초·중·고·대학 교원 67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승의날 기념 교원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교원평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가 81.3%로 집계됐다.
그간 교육부는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제도 전면 폐지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해 세종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자유 서술식 문항을 통해 교사에게 성희롱성 답변을 적어낸 사건으로 학생은 퇴학을 당하고 피해 교사는 교단을 떠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따르면, 답변에 'XX 크더라, 짜면 모유 나오는 부분이냐?', 'XX이 작아', '김정은 기쁨-조나 해라'는 입에 담기 어려운 내용이 담겼다.
전교조는 지난해 12월 긴급 피해 사례 조사를 실시했고, 응답 교사(6507명) 중 69.4%가 성희롱, 외모 비하, 인격 모독 등의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자유 서술식 문항 입력 단계에서 경고 문구를 추가하고, 단어 사이에 특수문자를 넣어 입력해도 금칙어로 걸러낼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했다고 지난 6월 밝혔다. 올해 평가도 시행할 계획이었다.
교육부가 지난 3월23~28일 학부모 정책 모니터단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교원평가 평가 필요성에 '긍정' 답변이 87.7%였다. 평가 '잠정유보'는 응답자 전체 48%, '폐지'는 72.2%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당시 교육부는 서술형 평가를 두고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소통 창구"라고 밝혔다.
이 부총리의 이날 발표는 그간의 교육부 입장을 3개월여 만에 180도 뒤집은 것으로 지난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등 교사들의 성난 여론을 달래려는 조치로 보인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교사들이 숨지고, 정부가 마련한 교권침해 대책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등 교단의 여론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당초 올해 교원평가를 이달 중순 시행하려 했으나, 교직사회에 집단적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교원평가를 실시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고려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교원평가는 모욕, 성희롱 평가로 전락하고 교권침해 주범이 된 지 오래"라며 "가뜩이나 교권침해로 극단적 선택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교권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교원평가 전면 폐지까지 결정 시 2010년 도입 이후 13년만이지만, 학부모 여론 등을 고려해 폐지 대신 대수술을 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술형 평가를 없애거나 평가를 1~2년 유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직단체들은 차제에 교원평가 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폐지가 어렵다면 근본적 재설계가 이뤄질 때까지 시행을 무기한 유예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장원 교사노동조합연맹 대변인은 "이미 근무평정도 있고 (교원평가 외에도) 평가가 없지 않다"며 "처음 도입할 때부터 방법과 설계가 (취지에) 맞지 않아 학교 현장에 갈등만 일으킬 수 있어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으면 개발될 때까지 유예하는 게 맞다"며 "교원의 전문성을 평가하려면 전문성을 가진 평가 주체가 그 방법에 맞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그 권위가 인정될 텐데, 섣부른 방식으로 평가하면 교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조 대변인도 "유예, 검토를 넘어서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며 "현재의 '5점 척도'는 교사 전문성 신장을 위한 어떤 구체적 피드백도 제공하지 못하고 그 점수로 연수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전했다.
전교조도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교육부는 상반기 내내 교원평가와 서술평 평가 폐지에 대한 요구를 무시해왔다"며 "교육부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전향적 재설계가 아닌 교원평가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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