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어서 해외로 갔다는 클린스만 감독...그때 K리그는 한창 뜨거웠다
[인터풋볼] 김대식 기자 =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한테 한국축구를 이해하는 건 '일'로도 인식되지 않나보다.
클린스만 감독의 언행이 논란이 된 건 지난 10일에 공개된 인터뷰 때문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영국 현장에서 취재 중인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국내 거주 논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답변이 참으로 이상했다. 요약하자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서 해외로 나갔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에서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할 일이 없었을까.
클린스만 감독은 6월 이후로 K리그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 지난 7월 팀 K리그 경기를 직접 관전했지만 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이벤트성 경기였다. 선수들을 파악하기에 적합한 경기가 아니다.
더불어 자신이 많은 곳을 방문했다고 밝혔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광주FC와 강원FC 경기를 직접 관전한 적이 없다. 광주는 이번 시즌 이정효 감독을 필두로 K리그1에서 3위를 달리는 등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팀이다. 또한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선발한 이순민이 뛰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경기 녹화본을 통해서 지켜보고 이순민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었다면 혹은 K리그 현장을 자주 다닌 차두리 전 어드바이저(현 코치)의 조언을 듣고 이순민을 뽑기로 결정했다면 최소한 광주 경기를 1번 정도는 직접 관전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K리그1은 그나마 양반이다. 독일 3부 리그 소속인 디나모 드레스덴에서 활약 중인 박규현은 국가대표팀에 선발하면서 정작 K리그2는 완전히 등한시하는 중이다. 이번 시즌 클린스만 감독은 K리그2 현장에 딱 한 번만 얼굴을 드러냈다.
박규현의 선발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소속팀인 디나모 드레스덴의 수준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독일 3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규현을 지켜본 후에 국가대표팀에 뽑은 것처럼 K리그2 현장에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달라는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7월과 8월에 할 일이 없었던 게 아니다. K리그1과 K리그2는 모두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K리그 현장을 방문해 한국 축구를 이해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일인 7월 30일에 맞춰서 미국으로 건너가 휴가를 보내는 게 더욱 급했던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클린스만 감독의 말대로 코로나19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는 업무 처리 방식이 아예 달라졌다. 많은 업무가 비대면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면으로 해야만 하는 일은 존재한다. 대면으로 일을 처리해야만 하기 때문이며 그럴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이 믿기에 그렇다.
국제적인 수준의 축구를 한국축구에 이식하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과거와 달라졌다고 해도, 한국은 여전히 축구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당장 선수들의 객관적인 실력부터 지도자의 지도력 나아가서는 인프라와 미디어까지도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국제축구를 먼저 이식하기보다는 한국축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K리그 경기를 달랑 11경기 봐놓고, 한국축구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축구를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광주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수비자원으로 활용되는 이순민을 높은 위치까지 전진시켜서 공격적으로 기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격적인 장점이 뛰어나다고 선발한 안현범에게 수비적으로 안정감을 부여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축구에 대한 이해가 없이 국제적인 수준을 어떻게 이식할 수 있을까. 많은 부분에서 한국축구가 세계적인 레벨이 뒤처지는 게 사실이다. 부인할 수 없다. 국제적인 축구를 배워온(?) 클린스만 체제에서 당장 대표팀에 이식이 가능한 플레이가 있고, 때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감독이기에 모든 기준과 판단은 한국을 기반으로이뤄져야 하는 게 맞다. 억지로 전술을 끼워맞추다가는 이도저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의조차 클린스만 감독이 원하는 축구가 무엇인지를 먼저 보여줘야 의미가 있다. 클린스만 감독의 5경기는 그가 말하는 국제적인 수준의 축구가 어떤 축구인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누가 봐도 국제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9개월 전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을 상대로 비등비등한 경기력을 보여줬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축구는 역행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면 더 발전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은 클린스만 감독이 벤투 감독이 보여줬던 능력치에 반이라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비판에 익숙하다던 클린스만 감독은 왜 자신이 이렇게 비판을 받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다면 감독직을 내려놓는 것도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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