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24, 브라이언트의 24, 그리고 조코비치의 24
11일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이 끝난 미국 뉴욕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의 메인 코트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숫자 ‘24’와 관련된 특별한 이슈들이 쏟아졌다. 누구도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았던 마거릿 코트(호주)의 메이저대회 단식 우승 기록, 그리고 3년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역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였다.
조코비치는 이날 다닐 메드베데프(3위·러시아)를 3시간 16분 만에 3-0(6-3 7-6<7-5> 6-3)으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이번 우승은 조코비치의 통산 24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었다. 이로써 조코비치는 코트가 갖고 있던 메이저대회 단식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리나 윌리엄스(미국·23회)와 슈테피 그라프(독일), 라파엘 나달(스페인·이상 22회), 로저 페더러(스위스·20회)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도 해내지 못했던 업적을 조코비치가 해냈다. 코트의 우승 기록 중 절반 이상인 13회가 프로 선수들의 메이저대회 참가가 허용된 1968년 이전에 달성한 것임을 감안하면 조코비치의 업적은 더욱 빛이 난다.
조코비치는 우승 후 숫자 24와 ‘맘바 포에버(Mamba Forever)’가 새겨진 상의를 입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맘바는 2020년 헬기 사고로 숨진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브라이언트의 별명이었다. 숫자 24는 브라이언트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 쓰던 등번호였다.
조코비치는 브라이언트 생전에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2020년 호주오픈 우승 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이니셜과 현역 시절 등번호였던 ‘KB 8, 24’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시상대에 오르기도 했다. 조코비치는 이날 우승 뒤 “코비와는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내가 부상으로 힘들 때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줬고, 내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2000년대 세계 남자 테니스계를 양분했던 것은 페더러와 나달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조코비치의 경기력이 올라오면서 흔히 말하는 ‘빅3’의 시대가 열렸다.
많은 테니스 팬들이 조코비치를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하는 것도 테니스 역사에 손꼽힐 선수들이 등장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이들에게 우위를 점했고, 끝내 가장 많은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 등극 기간을 보더라도 페더러가 310주, 나달이 209주인 반면 조코비치는 무려 390주다. 이는 그라프의 377주를 앞서는 남녀 통합 1위다.
1981년생 페더러는 은퇴했고, 1986년생 나달도 랭킹이 100위 밖으로 밀려난 가운데 내년 은퇴를 선언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조코비치도 이제는 나이를 실감할 때가 됐다. 그럼에도 한층 더 원숙한 기량을 뽐내며 10살 이상 차이는 후배들과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있다. 조코비치는 전체 메이저대회 우승의 절반인 12회를 30대 이후에 해냈다.
이날 준우승한 메드베데프의 말은 조코비치의 현재 위상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메드베데프는 “여기서 지금까지 (은퇴하지 않고) 뭐하고 있는 것이냐”며 농담한 뒤 “나도 경력이 나쁘지 않다. 투어 대회에서 20번을 우승했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메이저대회에서만 24번을 우승했다. 정말 놀랍다”고 찬사를 보냈다.
메드베데프의 찬사에 조코비치는 “이런 역사를 새로 만드는 일은 언제나 놀랍고 특별한 일”이라는 말로 받았다. 이어 “7, 8세 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돼서 언젠가 윔블던 우승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24번이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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