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 외면’ 최장 기록 달성한 이재명 단식
과거 YS‧이해찬 등 3~6일 내 찾아 “건강 챙겨야”…與에서도 “김기현이 손 내밀어야”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야당 대표의 단식 투쟁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1일 '단식 12일차'를 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더 길게 단식을 이어간 전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이 대표 단식은 기록을 하나 세웠다. 최장 기간 여당 대표의 '외면'을 받은 단식이란 점. 야당 대표의 단식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여당 대표가 단식장을 찾지 않은 경우는 군부독재 정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싸우다가도 한 쪽이 단식에 돌입하면 으레 손을 내밀어 온 기존 정치권 공식과 이번 이 대표 단식은 사뭇 다르게 흐르고 있다.
단식 12일차를 맞은 이 대표를 만류하기 위한 야당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정부 인사나 여당 지도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이 대표 단식장을 찾은 여권 인물은 태영호 의원이 유일하다. 지난 7일 태 의원은 전날 대정부질문 도중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쓰레기"라는 발언을 들은 것을 항의하기 위해 이 대표를 찾았다가 민주당 관계자들로부터 끌려 나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김기현 "李, 단식하고 계시나" 한동훈 "잡범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7일 이 대표 단식장을 방문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이 대표 단식하고 계시나. 몰랐다"며 방문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꼼수 단식' '방탄 단식' '웰빙 단식'이라며 이 대표의 단식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이 대표 단식장 근처에서 수산물 시식회을 열 계획을 세우거나, 이 대표에게 고등어와 전복 식사를 권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 대표 단식에 대한 대통령실 차원의 입장도 전무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 대표를 찾아가 손 한 번 잡아주실 의향 없나'는 야당 질문에 "생각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제) 잡범도 소환 통보 받으면 단식하지 않겠나"라고 비꼬았다.
YS 3일, 이해찬 6일차에 DJ, 황교안에 손 내밀어
그동안 야당 대표의 단식은 여당 대표가 손을 내밀며 중단을 요청했을 때 비로소 중단 국면을 맞았다. 설령 단식의 단초가 된 쟁점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단식장 방문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당 대표는 국민 통합의 이미지를 쌓고 야당 대표는 단식 중단의 확실한 명분을 얻게 되는, '윈윈'이 이뤄져온 것이다.
군부독재 이후 단식 중인 야당 대표를 처음 찾아간 건 1990년 10월 김영삼(YS) 민주자유당 대표였다. 당시 지방자치제 도입을 촉구하며 김대중(DJ) 평화민주당 총재가 단식에 돌입한 지 사흘 째, YS는 DJ를 찾아가 만류했다. DJ가 단식 8일 차에 입원하자 YS는 병실로도 찾아갔다. 이듬해 여야는 지방의회 선거 도입을 관철했고 DJ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당시 정부·여당의 연락을 받고 단식을 풀었다"고 적었다.
2003년 11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가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를 위한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17일간 단식을 벌였다. 당시에도 단식 5일차 되던 날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이 찾아와 "이쯤에서 끝내라"고 촉구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찾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참모들이 만류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대신 방문한 문희상 실장은 "언제든지 연락을 주면 대통령과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전했고, 최 대표도 수긍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두 명의 야당 지도부가 단식에 돌입했다. 2018년 5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른바 '드루킹 댓글 사건'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국회서 단식을 벌였다. 우원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단식 3일차에 단식 중 폭행을 당해 이송된 김 원내대표를 병문안했다. 단식 8일차에도 김 원내대표를 찾아 "건강해야 싸움도 하지 않겠나"라며 중단을 요청했다. 김 원내대표 단식 중 새로 취임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출 당일 곧장 단식장으로 향했다.
이듬해인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해 삭발과 단식을 단행했다. 당시에도 단식 5일차와 6일차에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연이어 그를 방문해 누워있던 황 대표의 손을 잡고 "단식 중단하고 저와 협상하자"고 말했다.
"비인간적 정권" "이재명 단식 조건 모호해"
민주당은 이러한 전례들을 비추어 지금 정부‧여당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8일 "정치적 상대의 단식에 최소한의 배려나 예의가 없다"며 "정치 이전에 인간적 도리"라고 지적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11일 "앞선 야당 대표 단식 때는 여당에서 걱정하는 척하고 나와 극적 타협이 이뤄지곤 했다"며 "오히려 (야당 대표의 단식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비인간적 정권은 처음 본다"고 한탄했다.
여권에서도 김기현 대표가 이 대표를 찾는 것이 정치적 도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 나와 김기현 대표를 향해 "(단식장에) 가고 안 가고가 문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건강은 걱정해줘야 한다. (상대방이) 건강을 회복한 뒤에 또 싸우면 된다"며 "정말 좀 통 크게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당에선 이러한 반응은 이 대표의 단식 명분과 시기가 적절치 못하기 때문이란 얘기도 나온다. 당초 이 대표의 단식 조건이 하나하나 정부·여당에서 수용하기 모호하고 어려운 것이란 지적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이 대표가 내세우고 있는 요구가 국정쇄신, 전면 개각, 대통령 사죄 등 사실상 정부를 통째로 흔들기 위함으로 읽힌다. 앞선 야당 대표들이 '원포인트' 요구를 하며 단식에 임한 것과는 분명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표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법리스크 중심에 있는 인물이란 점도 여당으로서 손 내밀기 주저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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