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명사문 보다 동사문 쓰면 문장에 힘이 실려요
가) 9일 기상청에 따르면 ‘카눈’은 10일 오전 (…) 내륙을 관통해 북진하고, 11일 새벽 북한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나) 일부 국가 잼버리 대원들은 출국 일정을 미루고 한국에서 문화 탐방과 관광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지난달 11일 서울에서 K-팝 공연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쳤다. 그 사이 태풍 카눈의 북상과 잼버리 대원들의 이동 과정을 전한 언론들의 뉴스 문장 중에는 글쓰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표현이 있다. 서술어 ‘예정이다’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두 문장은 문법적으로 같은 것 같지만 실은 다르다.
정상적 명사문과 비정상적 명사문
가)와 나)를 골자만 추리면 각각 ‘카눈은 ~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대원들은 ~ 이어갈 예정이다’이다. 같은 문형이지만 읽을 때 자연스러움의 정도가 다르다. 비문 여부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가)는 비문이다. ‘카눈=예정’이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학자마다 다소 논란이 있지만 정상적 명사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대원들=예정’, 즉 예정의 주체는 대원들이기 때문에 주어와 서술어를 동격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측면에서 두 문장을 비교해보자. 가)의 ‘예정’은 명사문 성립 여부는 둘째치고 어휘론적으로 ‘단어 선택의 오류’이기도 하다. 예정은 ‘할 일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주체의 의지나 의도가 반영된 가치어다. 유정체에만 이 말을 쓸 수 있다. 태풍의 진로는 ‘예정’할 수 없고, 사람이 예측·관측하거나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는 ‘카눈’을 주어로 삼으려면 피동으로 쓸 수밖에 없다. 즉 ‘카눈은 ~ 북한으로 이동할 것으로 관측된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명사문은 ‘명사+이다’로 서술어를 만든다. 명사의 효용은 개념성과 압축성(또는 간결성)에 있다. 그 대신 서술성은 떨어진다. 그래서 명사문의 서술어는 반드시 ‘명사’에 서술격 조사 ‘-이다’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의 명사는 문장에서 보어 구실을 하며, ‘-이다’가 붙어 그 명사에 서술성을 부여한다. 당연히 명사문은 무언가를 규정하고 지시하는 데 유용하다. ‘무엇이 무엇이다’ 꼴인 명사문에서 이 서술부 ‘명사’가 주어와 일정한 의미적 관계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주체 드러내 주어로 삼는 게 요령
수많은 변형 문장 속에서 이 주어-서술어 관계의 성립 여부에 따라 정상적 명사문과 비정상적 명사문이 갈린다. 신문 언어에서 흔히 나타나는 서술어 ‘~할 전망이다’류가 대표적인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다. 다 똑같은 비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① 그는 내일 떠날 ‘계획이다’. ② 그는 내일 떠날 ‘전망이다’. 두 문장은 같은 유형의 명사문 같지만 비문 여부가 다르다. ①을 동사문으로 바꾸면 ‘그는 내일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다’이다. ‘그=계획의 주체’다. 따라서 서술어 ‘계획이다’는 주어의 동작,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정상적 명사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에 비해 ②의 서술어 ‘전망이다’는 주어‘그’와 연관성이 없다. ①과 달리 ‘그≠전망의 주체’다. ‘전망’의 주체는 화자(話者)이거나 제3의 누군가로 보이는데, ‘그’가 주어인 문장에서 서술어로 행세하고 있으니 머리 따로, 꼬리 따로인 셈이다.
흔히 볼 수 있는 ③ ‘수출이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④ ‘아파트 분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같은 문장이 모두 바른 표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망이다’ 부분을 ‘~ㄹ 것으로 전망된다’처럼 피동형으로 바꿔 동사문으로 써야 바른 문장이 된다.
더 좋은 방법은 주체를 드러내 주어로 삼는 것이다. 가령 ‘전문가’와 ‘업계’가 주어라면, ③ ‘전문가들은 수출이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④ ‘업계에서는 아파트 분양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가 된다. 이것이 본래 형태인 동사문일 것이다. 이 형태가 구성이 탄탄해 가장 안정적인 문장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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