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우리는 사랑스러운 ‘나’를 만날 수 있다[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intro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김무곤 교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중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다. 어떠한 용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읽기라니! ‘별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읽는 행위’ 위에는 시간이 나이테처럼 축적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 ‘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그 아홉 번째는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문학동네)이다.
“희진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희진이’가 됐다.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고, 친구를 기쁘게 하고 싶어 궁리하는 희진이에게 희진이의 이모가 한 말이 불현듯 다가왔다. 갑작스러웠다.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자꾸만 내가 보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 교수에게 잘 보이고 싶은 ‘희원이’와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지수’가 있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모’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말하지 못하는 ‘소리’도 영락없는 내 모습이었다.
나의 존재가 타인에게도 유의미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살았다. 학교와 직장에서, 결혼 생활과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윗집 아주머니에게도 작은 기쁨을 준다면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자부했다. 인정욕구가 강한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가끔은 그들이 잘못한 일을 내 탓으로 돌릴 때,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속이 곪아 가는 것도 방관한 채 다른 사람들이 기쁘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나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꽤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덮어 버렸다. 그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사랑받는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나는 왜 사랑받고 싶은가?’도 물어야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처럼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기본욕구다. 물론 타인의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서 사랑은 살아가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일의 밑거름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주고받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한때 자아존중감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화두인 적이 있었다. 존중과 사랑은 비슷하지만 다른 말이다. 존중은 이해해야 가능하지만 사랑은 이해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알아내어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는 일이 더 먼저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 자아수용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출발점이다. 타인이든지 자신이든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수용이 먼저다.
최은영 작가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녀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그녀가 하는 평범한 이야기에 왜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지 의아하면서도 궁금했다. 막연한 호기심과 부러움 반 질투 반인 기분이랄까. 그의 소설은 조금 밋밋하고 심심해서 솔직히 말하면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최은영의 글이 나에게 썩 와닿지는 않아’라고 생각했던 내가 여러 편의 다른 소설에서 비슷한 뉘앙스의 말에 자꾸 밑줄 그으며 물었다. 작가가 달라진 건지, 내가 달라진 건지, 그도 아니면 세상의 공기가 달라진 건지, 달라진 게 도대체 뭘까?
최은영의 소설을 왜 읽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성인이 되면서 충고나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나보다 어른인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치고 흔들릴 때, 기댈 누군가의 곁이 필요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최은영의 소설은 따듯하다고 하지만, 나는 서늘하다. 목덜미가 서늘해져서 두루뭉술 넘어갈 수 없게 한다. 스스로의 몫을 찾게 만든다. 그동안 아무도 내게 해 주지 않았던 말을 그녀가 속삭인다. ‘윤정아, 네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라고….
‘나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들으라고, 나를 계속 지켜보라고, 나를 사랑하라고.’ 나에게만 말해 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설이 주는 쾌락을 제대로 맛봤다. ‘아주 희미한 빛’ 같은 그녀의 한마디로 이제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지난 시대에 박완서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최은영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녀의 ‘찐팬’이 됐다.
김윤정(서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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