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시위 대신 오페라 아리아···맨날 이랬으면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9. 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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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 야외 공연 ‘카르멘’

가을밤 광화문광장서 이색무대

성악가들의 뛰어난 가창력에

시민 합창·무용단 78명 참여

불쇼·폴댄스로 볼만했지만

비윤리적 결말은 아쉬워

8일 서울시오페라단이 광화문광장 야외 특설무대에서 선보인 오페라 ‘카르멘’의 한 장면. 카르멘 역 메조소프라노 송윤진(가운데)과 합창단.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무료 야외 오페라라는데, 보고 갈까?”

지난 8일 저녁, 서울 광화문을 지나던 시민들의 발길을 광장 한복판의 특설 무대가 잡아끌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카르멘’을 위해 설치된 1000석 규모의 간이 공연장이다. 무대 장치는 단출했지만, 활짝 펼친 부채 모양 대형 조명 장치 4개가 화려함을 더했다. 이날 공연 시간을 전후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등 객석 외 광장에 운집한 시민은 약 6000명(주최 측 추산)에 달했다. 청명한 날씨에 수준급 아리아가 울려 퍼지자 사전 신청 없이 광장을 방문한 이들도 삼삼오오 공연을 즐겼다. 공연은 9일까지 양일간 이어져 지난달 9일 개막한 세종문화회관의 세종썸머페스티벌 마무리를 장식했다.

카르멘은 조르주 비제가 작곡해 1875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오페라로,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같은 아리아가 사랑받으며 오늘날에도 인기 작품으로 꼽힌다. 자유를 갈망하는 불같은 성격의 집시 여인 카르멘과 그를 사랑한 군인 돈 호세, 투우사 에스카미요 등이 얽힌 치정극이다. 전막 공연은 보통 2시간 넘게 걸리지만 이번 공연은 70분으로 압축해 선보였다.

시민 참여형인 데다 야외라는 특성상 무대 동선과 구성엔 다소 엉성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도 도전적인 기획 의도는 느껴졌다. 무대엔 전문 성악가뿐 아니라 사전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시민 78명이 무대에 합창단 혹은 무용수로 올랐다. 반주는 최승한 지휘로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녹음한 음원을 틀었고, 현장 지휘는 박진희 음악코치가 맡았다.

원작에 없는 요소도 눈길을 끌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카르멘 서곡에선 세 명의 여성 무용수가 폴댄스를, 후반부의 3막 간주곡에선 남성 세 명이 ‘불 쇼’를 선보였다. 맥락에 딱히 들어맞는 구성은 아니었지만, 기둥에 매달려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거나 자유자재로 불을 다루는 묘기에 관객들은 탄성을 뱉었다. 실내 오페라에선 화재 위험으로 불을 다루지 않기에 야외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이색적인 시도로 평가할 만했다. 실시간 자막은 전광판뿐 아니라 QR코드를 통해 개인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게 했다.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오페라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극장에선 볼 수 없는, 오직 야외에서만 가능한 종합예술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8일 서울 광화문광장 야외 특설무대에 오른 서울시오페라단 ‘카르멘’ 공연 중 3막 간주곡에 맞춰 불 쇼를 선보이는 출연자.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극의 비윤리적 결말이 그대로 표현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돈 호세가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카르멘을 칼로 찌르는 장면이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칼부림이나 교제 폭력·살인에 대한 민감성 없이 노골적으로 묘사돼서다. 객석에 어린 아이와 함께 한 가족 단위 관람객 등도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이 아쉬운 대목이다.

성악가들의 가창력 만큼은 빛을 발했다. 광장 옆 세종대로를 지나는 버스, 오토바이 등 차량 소음이 간간이 들려오는데도 눈과 귀를 무대에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특히 돈 호세 역의 테너 정의근은 힘 있는 고음과 몰입감 높은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그가 카르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애절한 아리아 ‘당신이 내게 던진 그 꽃’을 부르자 객석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중앙계단 쪽에서도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카르멘 역 메조소프라노 송윤진, 에스카미요 역 바리톤 한규원, 돈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라 역 소프라논 김유미 등도 호연을 펼쳤다.

8일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 무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카르멘’의 한 장면. 사진제공=세종문회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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