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전 멕시코 한인 이주사로 되돌아보는 오늘 우리…정연두 개인전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9. 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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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MMCA프로젝트 작가
정연두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멕시코 이주 한인 추적기
다큐멘터리 영상·설치 등
정연두, ‘날의 벽’(2023) <국립현대미술관>
무려 12m 높이로 한쪽 벽을 채운 대형 설치가 장관이다. 가까이 다가서니 어릴 적 ‘추억의 뽑기’처럼 구현한 마체테(농기구) 설탕 조각이다. 마체테는 보편적인 농기구이자 농민 반란의 무기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삶 ‘디아스포라’에 천착해온 작가 정연두(54)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착안해 구현한 작품 ‘날의 벽’(2023)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세워졌다.

작가는 지난해 제주에서 직접 사탕수수를 키워본 경험과 조사연구를 통해 달콤한 설탕에 숨겨진 제국주의 착취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작업실에서 뜨거운 설탕을 녹이고 실리콘 틀에 붓는 과정에서 불에 데거나 냄비도 태우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약 6개월간 마체테를 하루 1~2개씩 만들고 뜨거운 여름 제습기와 에어컨을 돌려가며 보관했다.

올해 ‘MMCA 현대차 시리즈’ 선정작가인 정연두의 개인전 ‘백년 여행기’ 장면이다. 200여년 전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뿌리내린 백년초에서 모티브를 얻어, 1905년 영국 상선을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주 수도 메리다에 도착한 한인들 이야기에 예술적 상상력을 풀어 신작 영상과 설치로 완성했다.

정연두, ‘상상곡’(2023)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 속 열린 공간인 서울박스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초록 식물 흡음재와 동그랗고 빨간 스피커가 천장에 달린 ‘상상곡’이 펼쳐진다. 스피커 아래 서면 헝가리어와 아랍어 등 낯선 언어가 흘러나온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 생활의 꿈이나 고단함을 읊조린다. 현재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이들의 삶이 118년 전 멕시코에 도착한 한인들과 겹친다.
정연두, ‘세대초상’(2023) <국립현대미술관>
본격적인 멕시코 이주 서사는 초기 정착 한인들 기념사진, 작가가 구현한 마임 공연 설치작품으로 시작된다. 작가가 2년에 걸쳐 3회 현지에서 취재한 한인 가족 10대부터 90대까지, 6쌍이 서로 마주 보는 형식의 ‘세대 초상’ 영상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모습에서 강력한 유전자의 힘이 느껴지지만 낯선 모습이 아주 느린 화면으로 흐르면 애잔함을 더한다.
정연두, ‘백년 여행기’(2023)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연두의 ‘백년 여행기’(2023)를 관람하는 모습. <이한나 기자>
주제작인 ‘백년 여행기’는 곳곳에 선인장 등 열대 식물 오브제가 있는 널찍하고 하얀 공간에 앉아 거대한 영상과 작은 영상 3개를 함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재미 사학자 이자경의 ‘한국인 멕시코 여행사’(1998)와 황성신문 이민자 모집광고, 멕시코의 독립운동가 황보영주(1895~1959)의 시 등에 현재 멕시코 선인장 가공공장 모습도 더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한국 판소리와 멕시코 전통공연 마리아치, 일본의 기다유 분라쿠 공연이 서로 주고받듯 번갈아 이어진다. 혼성의 문화와 역사가 뒤섞인 모습에서 이주 서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작가는 “멕시코에서 한인들을 직접 만나고 상상하는 과정을 즐기며 작업했다”며 “작가로서 다루기 힘든 역사적인 무게가 있는 소재지만, 무게감을 덜어내고 예술작품으로서 흥미 있게, 재미있게 봐달라”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날의 벽’ 작품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정연두 작가 <이한나 기자>
정연두 작가 <사진 소농지,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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