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처럼 사라진 ‘7·30 환상투’···최원태의 부진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날의 최원태는 완벽했다. 6이닝 5삼진 2안타 무실점. 더구나 상대는 잠실 라이벌 두산. 각본이라도 짠 것 같은 완벽한 ‘이적 신고식’이었다. 지난 7월30일 최원태의 두산전 역투에 염경엽 LG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의 숨통이 트였다고 기뻐했다. LG 관계자들도 대부분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개월 남짓이 흐른 지금, 그날의 ‘뿌듯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최원태는 이후 6경기에서 1승(2패)을 거뒀지만 평균자책 10.13으로 극도의 부진을 이어갔다. 26.2이닝을 던지는 동안 46안타를 맞는 등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는 2.18에 이른다. 적어도 LG 유니폼을 입고 8,9월을 보내고 있는 최원태는 전 소속구단 키움에서 안정적인 공을 던지던 ‘최원태’는 아니다.
덩달아 LG는 ‘최원태’라는 이름 앞에서 굉장히 큰 숙제를 안게 됐다. 그저 수적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선발 카드로 최원태를 전격 영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LG로서는 최원태의 부진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해법을 돌출한 뒤에는 결단이 필요한 시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풀이는 ‘왜’에서 시작된다.
■‘용두사미’ 된 대만 전훈 효과
최원태는 풀타임 선발투수로 시동을 건 2017년 이후로 지난해까지 7~8월 평균자책이 4.35로 대체로 여름 시즌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최원태는 올시즌 만큼은 개막 극초반 페이스가 더디 올라오는 것을 바로 잡는 데 초점을 맞추고 스프링캠프를 보냈다.
지난 2월 키움의 1군 선수들이 주로 합류한 미국 애리조나 캠프 대신 실전이 많은 대만 캠프에서 몸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덕분에 최원태는 지난 4월5일 시즌 첫 선발 마운드에 오른 고척 LG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앞서 7년 연속 이어오던 시즌 첫 등판 무승 징크스도 깼다. 이는 최원태가 지난 7월까지 17경기에서 7승4패 평균자책 3.07을 찍으면서 리그 12위 이닝수(102.1이닝)를 기록하는 등 순항한 배경 중 하나였다.
우천 휴식일 없는 고척 돔구장을 홈으로 쓰는 키움에서는 선발투수들이 돌아가며 로테이션을 건너뛰는 ‘기본 관리’를 받는다. 최원태 또한 거의 매시즌 그랬다. 그러나 최원태는 2018년에도 7월까지 123.1이닝을 던진 뒤 후반기 굉장히 고전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으로 시즌을 일주일 앞당겨 시작한 시즌이다. 그해 전반기 18경기에서 11승6패 평균자책 3.77을 기록한 최원태는 후반기에는 팔꿈치 불편함으로 5경기에만 나와 2승1패 평균자책 4.67로 부진했다.
■22시즌처럼 휴식이 보약일까
최원태는 지난해에는 전반기 16경기 78.1이닝만을 던졌지만, 후반기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10경기에만 나와 2패 평균자책 5.60으로 흔들렸다. 최원태가 어수선하게 후반기를 보내고 휴식과 재정비를 거친 뒤 가을야구에서는 롱릴리프로 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원태는 지난해 LG와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3.1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키움 불펜진에는 ‘산소 같은 투수’ 역할을 했다.
최원태는 올시즌 주구종인 투심 패스트볼 비율을 줄이고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비율을 높이는 변신을 시도했다. 예컨대 투심 패스트볼 비율이 지난해 46.3%에서 26.5%(스탯티즈 기준)로 줄었다. 이같은 패턴 변화는 전반기 성공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위가 곧 결과인 포심패스트볼은 스태미너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구종이다. 시즌이 거듭되면서 올해 주로 던지는 구종의 힘에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
■운명의 가을, 최원태를 어떻게 쓸까
LG 벤치는 고민 많아진 시간을 맞고 있다. 정규시즌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에 선착하는 것을 전제로도 최원태의 보직을 미리 낙점해두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일단 최원태는 회복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1일에는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재정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진짜 고민은 그 다음 시간 이어질 수 있다. 최원태가 잔여 정규시즌 보편적 신뢰를 받을 만한 피칭을 다시 두어 차례 하지 못한다면, LG 벤치로서는 여러 변수를 고려하며 가을야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초 시나리오대로라면 최원태는 정규시즌 후반기 LG의 한국시리즈 직행에 공헌한 뒤 가을야구 마지막 무대에서 팀의 3선발로 활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대로라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 LG 벤치의 눈과 머리 그리고 가슴에서 나오는 결정이 굉장히 중요해지는 시간이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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