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게’ 달갑지 않은 ‘선한 숙맥’ 한지민의 각성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사람은 누구나 속에 악마를 데리고 산대요. 그러니까 사람 쉽게 믿지 마세요.”
“그래도 믿고 싶어요.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를 의심하고 사는 것보다 믿으며 사는 게 더 편하잖아요.”
JTBC 토일드라마 '힙하게' 9회에 등장한 김선우(수호 분)와 봉예분(한지민 분)의 대화다. 차주만(이승준)의 국회의원 당선소식을 전하는 TV 뉴스를 보며 선우는 차주만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예분은 “아저씨는 좋은 사람예요. 이건 확실해요.”라고 답 한 뒤 끝에 이어진 대사다.
하지만 대하축제를 빌미로 만들어진 사이코메트리 부스에서 예분은 차주만을 대상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 정미옥(최정인)의 죽음에 차주만이 연관된듯한 장면을 보고 만 것이다.
정미옥은 바다에 빠진 자동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었다. 예분이 차갑게 식은 엄마를 붙잡고 통곡할 때 차주만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위로했었다. 하지만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본 바로는 죽기 전 정미옥은 마치 약에 취해 잠이 든 듯 움찔거렸고 조수석 창으로는 그런 정미옥을 지켜보는 차주만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봉예분은 공부 잘 해 수의사는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숙맥이다. ‘숙맥(菽麥)’은 콩과 보리를 일컫는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줄임말로도 쓰여, 즉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예분을 숙맥으로 만든 데는 사람을 믿고 싶어하는 선의, 의심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이 크게 작용했다. 비단 예분만이 숙맥은 아니다. 만식이는 심성이 고와서, 동식이는 아무개집 뒷간 고쳐줘서, 상민이는 배옥희(주민경 분) 동창이라서, 아무개는 밀양 박씨 종친이라서 용의선상에서 배제하는 무진 사람들 대부분이 작은 빌미만으로도 사람을 믿어버리는 선의의 숙맥들인 것이다.
그런 무진의 숙맥들 중 하나인 예분이 각성했다. 차창 밖에서 엄마를 지켜보던 차주만의 얼굴이 민낯임을, 자신을 안타깝게 위로하던 얼굴이 가면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이미 봉예분은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차주만과 연관된 제법 많은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차주만의 선거운동에 뛰어든 할아버지 정의환(양재성 분)의 이해 못할 행동도 그 하나다. 정의환은 차주만의 후원자 명부를 훔쳐냈었고 원종묵(김희원 분)에게는 그동안 자신이 조사한 자료라며 스크랩북을 건네기도 했었다. 그 스크랩북엔 무진시 개발과 관련한 기사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모 정현옥(박성연 분)을 통해선 엄마 정미옥이 기자 신분임에도 무진 개발 반대 운동에 나섰던 것도 확인했다.
각성 전 숙맥이던 시절 의미없이 흩뿌려졌던 구슬들이 실타래에 꿰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정의환의 자료를 받은 원종묵은 그 자료에 기초해 과거 무진 부동산 사기 사건을 다시 파보기 시작했다. 많은 무진 사람들이 당시 재개발 소문에 웃돈 주고 땅을 샀고,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음을 확인했다. 다만 한 사람 재개발을 주도했던 당시 무진시 국회의원 윤덕현(최무성)만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다.
그리고 윤덕현의 보좌관이었던 차주만이 그 지역구를 물려받아 다시 한번 금배지를 달고 재개발 공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윤덕현이 볼 때 재개발 반대에 앞장 선 기자 정미옥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차주만에게 회유를 지시했을 만 하다. 회유가 실패할 경우엔 제거까지도 지시했을 수 있다. 이미 윤덕현호에 승선해 이익공동체가 된 차주만 역시 동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려진다. 개발이익은 둘째 치더라도 정치지망생 차주만에게 지역구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봉예분이 각성을 통해 새로운 숙제를 떠안았건 말건 아직 해결못한 숙제, 무진시 연쇄 살인사건도 여전하다. 박승길(최지혁 분)- BJ 시아(최희진 분)-이지숙(장유화 분)으로 이어진 장미칼 살인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문장열(이민기 분)은 봉예분만 아는 이지숙의 갈대밭 은신처를 범인이 정확히 특정한 것을 근거로 범인도 또 한 명의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자로 단정지었다.
그에 따라 유성우 떨어지던 그 날 전광식(박노식 분) 농장에 함께 했던 인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았고 대하축제를 활용한 릴레이 사이코메트리 결과, 그날 현장에는 박종배(박혁권), 차주만과 그 보좌관, 김선우 등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종배는 신빨 올리려 무진산을 찾았고, 차주만은 리조트개발을 위해 농장 매각을 종용하러 나타났으며, 김선우는 그런 차주만의 뒤를 밟아 농장을 찾았다.
이 중 차주만과 보좌관은 이지숙 살해 당시 투표 개표결과를 지켜보았으니 제외되고 박종배와 김선우의 알리바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드라마는 특히 김선우에게 차주만을 향한 노골적인 적의와 스토킹의 설정을 부여해 숨겨진 스토리와 그에 따른 혐의를 부추기고 있다.
어쨌거나 누구를 의심하고 사는 것보다 믿으며 사는 게 더 편했던 숙맥 봉예분이 각성했다. ‘사람 쉽게 믿지 말라’던 선우에게 공감했다. 각성한 봉예분은 과연 ‘짝사랑’ 선우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마저 거둘 수 있을까? ‘선한 숙맥’ 봉예분의 각성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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