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사수’ 각국 지원 이어지는데…모로코는 왜 도움 요청 안 하나

김서영 기자 2023. 9. 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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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모로코 아미즈미즈에서 한 주민이 강진으로 무너진 집 앞에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20여년 만에 최악의 지진 피해를 입은 모로코에 전 세계가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정작 모로코 정부가 도움 요청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골든타임’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물자와 인력이 닿지 않은 재난 지역에선 생존자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는 등 자구책에 나섰다.

규모 6.8의 강진 발생 나흘째인 11일(현지시간) 오전 10시 기준으로 모로코 지진 희생자가 2497명으로 집계됐다고 모로코 국영 일간지 ‘르 마탱’이 보도했다. 부상자도 2476명에 달한다. 중환자의 수가 많은 데다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이 계속 진행되는 터라 사상자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모로코 강진의 인명피해 추정치 평가를 지진 발생 직후 내린 기존의 ‘황색경보’에서 전날 ‘적색경보’로 두 단계 상향했다. USBS는 이번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000∼1만명일 가능성이 35%로 가장 높다고 봤다. 그러나 1만∼10만명에 이를 가능성도 21%로 전망했고, 6%의 확률로 10만명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국제 사회 앞다퉈 손 내미는데, 정작 모로코 정부는?

국제 사회는 앞다퉈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스페인은 구조 인력 56명과 탐지견 4마리로 구성된 구조대를 보냈으며 다음 구조대가 파견을 대기 중이다. 영국도 수색구조 전문가 60명과 탐지견 4마리, 의료진 4명 등 인력을 배치했다.

이밖에도 프랑스, 이스라엘, 튀니지, 미국, 튀르키예, 쿠웨이트, 오만, 대만 등이 “모로코를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공식 지원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국가들은 모로코의 승인만 있으면 즉각 자금과 구호 물자, 인력 투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해외 각국이 도울 의사를 밝히는데도 정작 모로코 당국은 공식 요청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튀르키예 대지진 당시 현지에서 활동했던 한 단체 활동가는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와의 인터뷰에서 “모로코는 우리 단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모로코는 “스페인·영국·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 4개국에서만 도움을 받았다”며 “조율이 부족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10일(현지시간) 강진이 발생한 모로코 마라케시 아미즈미즈 인근 마을에서 유가족이 서로를 껴안은 채 슬픔을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로코 정부가 구조 요청을 지체하는 사이 이제 골든타임은 만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지진 발생 후 72시간은 매몰자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골든 타임’으로 꼽힌다. 다급한 주민들은 맨손이나 망치 같은 작은 도구를 이용해 생존자를 구하려 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전기와 전화가 모두 끊겨 외부에 도움을 청하기도 불가능하고, 대피소가 마련되지 않은 곳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지역의 한 이맘(33)은 “우리는 누군가가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54)은 “이번 주에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비가 오지 않으면 (식수가 모자라) 상황이 정말 나빠질 것이라 두렵다”고 했다.

이번 지진은 아틀라스 산맥을 끼고 일어난 탓에 낙석으로 주요 도로가 막혀 구호의 손길이 닿지 못한 마을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아틀라스 산맥 건너편의 마을들, 심지어 마라케시에서 불과 1~2시간 거리인 곳들도 공식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면서 “구급차는 보기 드물고 구조된 부상자들은 대부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생존자들은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다. 모로코 정부는 구조 활동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으며 사상자 현황도 더디게 알리고 있다. 마라케시에서 약 50㎞ 떨어진 아스니의 한 주민은 BBC에 “우리에게는 음식도, 빵도, 야채도 없다”면서 “아무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절규했다. 주민 200명 중 90명이 사망한 타페가그테 마을 주민 하산은 “우리에게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들은 너무 늦게 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권위주의 통치, 재난 대응에 비효율적”

모로코 정부의 늑장 대응 원인으로 권위주의적인 통치 구조가 지적되고 있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던 모로코 국왕 무함마드 6세가 비상회의를 주재하러 돌아오긴 했지만, 국왕을 기다리며 황금 같은 시간이 버려졌다는 것이다.

사미아 에라주키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엄격하게 통제되고 중앙집중화된 정부가 재난 대응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모로코에서는 왕궁의 승인 없이는 아무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 국왕이 물리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는 권위주의적 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통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보여준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무함마드 6세는 왕궁을 자주 비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에도 프랑스와 가봉 등 모로코 밖에서 300일 가까운 시간을 보낸 뒤 지난 3월에야 귀국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나 모로코 내에서 왕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모로코에서 국왕을 모독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지난달 모로코의 한 네티즌은 모로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5년형을 선고받았다.

10일(현지시간) 강진이 발생한 북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 아미즈미즈 인근의 한 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시신을 수습하자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아미즈미즈 지역 주민 사이드 아푸자르는 지난 8일 밤 동생 집에 들었다가 땅이 뒤흔들리자 집을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그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아내와 두 자녀가 있던 집이 무너져내렸다. 밤새 땅을 파헤친 끝에 아내는 구했지만 두 자녀는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아푸자르의 아들 함자(18)가 동생 유스라(13)를 꼭 안고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BBC는 살아남은 이들이 가족의 시신이 발견하고 통곡하는 비극이 아틀라스 산맥을 따라 모로코의 여러 마을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외부 도움을 기다리는 사이 주민들은 직접 사망자를 수습하고 애도하고 있다. 일부 시신은 이슬람 장례 의식을 따르기도 전에 매장됐다고 NYT는 전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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