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관객이 함께 채우는 시공간…‘2023 아워세트 : 레벨나인×손동현’ [전시리뷰]

송상호 기자 2023. 9. 11. 14: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손동현 작가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전시실에서 '박달나무 동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송상호기자

 

따분한 미술관에서 창작자와 수용자가 함께 만드는 시공간이 피어날 수 있을까?

‘2023 아워세트 : 레벨나인×손동현’전이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지난 5일 개막했다.

이번 기획전은 동양화로 과거에서 현재를 끌어와 동시대성을 다루는 손동현 작가와 현재에서 미래를 넘나드는 창작그룹 ‘레벨나인(Rebel9)’의 인터렉티브 작품들을 겹쳐놓을 때 생겨나는 시간선에 주목했다.

장르도, 영역도, 표현 방식도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작가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바로 창작이든 감상이든 예술을 대하는 데 있어 수용자의 자세가 우선시된다는 점이다.

손동현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을 동시대의 관점으로 뜯어보는 작업을 통해 동양화를 대하는 수용자로서도 역시 능동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디지털 정보와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레벨나인의 작업 역시 자신들의 창작물이 어떻게 수용자와 연결되는지 고민해왔다. 그들의 작품은 수용자 없이는 의미를 획득하기 어렵다.

이에 관람객들은 이들이 마련한 체험의 장을 거닐며 작품을 수용하는 단계를 넘어 전시를 완성하는 주체가 된다.

레벨나인·손동현作 '라이트하우스-우리가 묻는 대로'.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손동현 작가와 레벨나인의 협업으로 탄생한 ‘라이트하우스-우리가 묻는 대로’를 통해 관람객은 AI와 문답을 주고받는 항해자로서 손 작가의 작품세계를 유영할 수 있다. 질문을 입력하면 미리 정보를 학습한 AI가 몇 가지 형태의 답변을 제시하고, 관람객의 선택에 따라 감상의 방향이 결정된다.

또 다른 협업 작품 ‘만화경’ 역시 수용 주체의 선택이 작품의 빈틈을 메꾼다. 패널에서 원하는 작품을 고른 뒤 패턴 등 세부 설정을 선택하면 벽면에서 관람객이 설정한 대로 디지털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창작자와 수용자가 전시장을 교류의 장으로 가꿔내는 셈이다.

레벨나인의 ‘정보의 미술관, 미술관의 정보’를 만날 수 있는 전시장 전경. 송상호기자

무한한 정보의 바다를 영감의 원천 삼는 레벨나인은 뮤지엄의 아카이브를 해석하고 재구성하고 수용방식을 조정했다. 이어서 만나는 ‘정보의 미술관, 미술관의 정보’는 경험에 참여하는 주체가 정보를 선별하고 판단하는 길을 비추는 조력자가 된다. 작가는 똑같은 아카이브 자료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얼마든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집중했다. 

눈길을 돌리면 손동현 작가의 ‘박달나무 동산’이 관람자를 압도한다. 수원지역을 비롯한 경기도와 전국 팔도가 자리한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들이 작가를 통해 해체되고 재조합되면서 지금 이 시점에 관람객과 공유하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는 김홍도의 화법을 비슷하게 흉내내기도 하고, 그가 하지 않았을 법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손 작가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림에 투영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채로운 시점을 여러 폭의 그림에 뒤섞어 놓는 시도 자체가 곧 우리가 어디서든 정보의 분열을 경험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람객들이 레벨나인의 ‘매직카펫라이드’에 장비를 착용한 채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 송상호기자

레벨나인의 신작 ‘매직카펫라이드’ 역시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로 빚어낸 또 다른 세상이다. 수원의 한 상점이라고 설정된 가상세계 속에서, 장비를 착용한 관람객들이 체험하는 모습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송출되면서 현실과 가상이 연결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윤여진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췄다”며 “작품 감상의 스펙트럼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가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17일까지.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