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도·베트남과 더 촘촘한 중국 포위망…'뾰족수' 없는 中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도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에 이은 베트남 순방으로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이 더 촘촘하고 강력해졌다.
그간 미·중 양국에 일정하게 거리를 둬왔던 인도와 베트남이 미국 편으로 기울어 중국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형국이다.
사회주의 체제인 베트남은 이번에 중국·러시아와 같은 수준으로 미국과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외교 관계를 격상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미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일원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큰 힘을 실어 온 인도는 G20 정상회의 기간에 인도-중동-유럽의 철도·항구 등 인프라를 연결하는 미국 주도 사업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큰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 악몽 딛고 실리 택한 美·베트남…바이든 "역사적 순간"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베트남에 도착해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과 마주 앉았다. 쫑 서기장은 베트남 권력 서열 1위다.
바이든 대통령은 쫑 서기장과 정상회담 후 "역사적 순간이었다"면서 (미국과 베트남이) 분쟁에서 정상화, 그리고 번영과 안보를 위한 힘이 될 외교관계 격상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쫑 서기장 역시 양국 파트너십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화답했다.
눈길을 끄는 건 양국이 외교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한 점이다. 이로써 공산당 1당 지배 체제인 베트남은 그와 유사한 중국, 그리고 옛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와 동등한 수준의 외교관계를 전쟁 상대국이었던 미국과도 맺었다.
비동맹을 표방해온 베트남은 50여년 전 전쟁 상대국인 미국과는 거리를 둬왔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가 1995년 7월 국교를 정상화했음에도 여러 측면에서 제한이 많았다.
그랬던 양국이 이처럼 '올리브 가지'를 교환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미국으로선 외교관계 격상으로 중국에 대한 견제 기반을 더 확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베트남과 힘을 합쳐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 야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베트남과 연대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이 한층 탄탄해질 수 있게 됐다.
물론 중국과 마찬가지로 서구식 인권과 민주주의에 경계심을 보이는 베트남 정권이 미국의 중국 포위망에 전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베트남은 말 그대로 실리 추구가 목적인 듯하다. 미국이 최대 수출 대상국이라는 점이 작용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양국 간 무역은 그간 큰 증가세를 보여왔다. 특히 최근 5년 새 애플·나이키 등 중국에서 '탈출'한 미국 기업들의 베트남 유입 등으로 무역 규모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전했다.
실제 양국 교역액은 작년에 1천238억6천만 달러(약 165조원)로 전년 대비 11% 늘었으며, 이번에 양국 관계 격상으로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더 순풍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베트남은 미국을 상대로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도, 비밀리에 러시아산 무기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해 눈길을 끈다.
베트남은 자국군 현대화를 목적으로 시베리아에 위치한 러시아·베트남 합작 석유기업을 통해 비용을 지불하고 러시아 무기를 받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美 주도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中 일대일로 막아서나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미국의 '맞불'이었다.
9일 체결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IMEC)' 설립 양해각서(MOU)가 그것이다.
미국이 중심축이고 인도가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유럽연합(EU)이 참여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가세할 것으로 전망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같은 경제회랑 구상이 본격화하면 중동의 맹주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접근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3월 중국이 '숙적'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재해 외교관계를 재개하도록 한 데 대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해빙을 준비하고 있다. 미·중의 중동 외교전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불참한 가운데 G20 무대에서 중국을 옥죄는 다국적 이니셔티브가 출범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백악관은 미국과 파트너국들이 기존 해상·육상 운송로를 보완하는 국가 간 선박-철도 환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송전·고속 데이터 전송을 위한 케이블과 청정 수소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구상이 아시아·유럽 대륙의 항구들은 연결하는 "진짜 빅딜"이라며 "더 안정되고 번영한 중동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IMEC에 대해 "미래 세대가 큰 꿈을 꿀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외신들은 미국이 민주주의 진영에 속한 인도, 유럽, 이스라엘 등과 함께 중동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중국 일대일로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경제회랑 구상에 담겼다고 평가했다.
중국 역시 이 구상이 일대일로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고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2012년 말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2013년부터 추진해온 중국-중앙아시아-유럽 간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이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현실화하려는 대외 확장 전략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미 일대일로의 균열은 시작됐다.
2019년 3월 주세페 콘테 총리 주도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공식 선언했던 이탈리아가 최근 탈퇴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회담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단 의사를 전달했다.
숨 고르기 하는 시진핑…반격 카드 구상할 듯
여러 가지 추론을 낳게 했던 시 주석의 G20 불참 속에서 일격을 당한 중국은 당황해하면서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그동안 서방 중심의 주요 7개국(G7)에 맞선 G20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해온 시 주석은 반격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되나, 최근의 중국 사정으로 볼 때 대응 카드가 여의찮아 보인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수교 중재를 시작으로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회담을 주도하면서 대미 압박의 강도를 높여왔던 중국의 입지가 좁아졌다.
특히 중국 주도로 브릭스에 추가로 가입한 6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미국 주도의 경제회랑 구상에 참여해 중국 입장이 난처해졌다.
중국은 일단 10월 베이징에서 열릴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을 대응의 계기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대일로가 국제 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는 한편 여러 나라의 발전과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으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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