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견제 한마음…美-베트남, 전쟁 반세기만에 '최고 수준' 동반자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됐다. 미국과 베트남이 양국 외교 관계를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반세기 전 전쟁의 악연으로 얽힌 두 나라가 '중국 견제'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손을 맞잡은 것이다.
베트남은 현재 조약 동맹국이 없다. 대신 파트너십 형태로 양자 관계를 맺는데, 크게 △포괄적 동반자 △전략적 협력 동반자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구분해 세 단계로 나뉜다. 양국은 베트남 전쟁(1960~1975) 이후 공산화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가 1995년 7월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 2013년이 돼서야 가장 낮은 수준의 파트너십인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전쟁의 여파로 관계 진전이 느렸던 양국이 이처럼 초고속 밀착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베트남은 양자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통상 수년이 걸리지만, 이번에 한꺼번에 두 단계를 격상하면서 반목의 역사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은 세계의 중요한 강대국이자 이 중요한 지역의 지표"라며 "우리의 관계는 갈등에서 관계 정상화 그리고 새롭고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50년간 진전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쫑 서기장은 "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래야만 우리는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베트남 간 국방 및 안보 협력도 증진될 전망이다. 미국 관리들은 앞으로 미국 항공모함의 베트남 입항이 늘어나고, 미국의 무기 판매 및 양국 간 합동 군사 훈련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무기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국가인 베트남은 공개적으로 무기 수입 다변화를 시도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베트남에 890만달러 상당의 군수 물자도 지원하기로 했다.
경제 측면에서도 양측 모두에 호재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맹 및 우방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의 핵심 파트너로 베트남을 꼽고 경제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지난해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전년보다 13.6% 증가한 1093억9000만달러(약 146조원)로 집계됐다. 양국은 이날 반도체 파트너십과 희토류 공급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각각 체결했다. 베트남은 중국 다음으로 희토류 매장량이 많은 국가다.
다만 베트남 특유의 외교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은 어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유연하게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를 통해 줄타기를 해왔다. 그레고리 폴링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시아 프로그램 국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베트남이 미국 쪽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베트남은 자치권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강대국(미국과 중국) 간 균형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이 갑자기 노선을 바꿔 중국을 등지고 미국 편에 설 가능성은 크지 않단 뜻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날 베트남이 러시아로부터 향후 20년간 총 80억달러(10조7000억원) 상당의 무기를 사들이기 위한 비밀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나왔다. NYT는 베트남의 이번 거래에 대해 "세계 강대국 사이를 능숙하게 누벼온 베트남 특유의 중립 외교 포석"이라며 "그들은 강대국들의 복잡한 셈법을 잘 읽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선 출범 초기부터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교 정책 전면에 두겠다고 공언한 바이든 행정부가 베트남과의 외교 관계에 공을 들이면서 말이 행동을 따르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 인권단체 프로젝트88의 공동 책임자 벤 스완튼은 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시민 사회에 대한 잔인한 탄압을 자행하는 일당 국가(베트남)와 외교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끔찍한 인권 기록을 가진 독재자들과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고 비난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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