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알리바바, 차이충신-우융밍 시대 시작… 빅테크 성공공식 새로 쓸까
차이충신 회장, 역사적 투자 유치는 모두 그의 작품
그룹 기술 토대 닦은 우융밍 CEO, 사업 이해도 높아
마윈, 소비 트렌드 변화·경쟁 과열에 “혁신 시급” 주문
장융(張勇·51) 알리바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그룹 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뒤를 이을 차이충신(蔡崇信·59) 회장과 우융밍(吴泳铭·48) CEO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윈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들은 각각 그룹의 자금 확보와 기술 토대 구축을 주도해 지금의 알리바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앞에 놓인 과제는 녹록지 않다. 마윈이 “과거 성공했던 방식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만큼 중국 소비 형태는 급격히 변하고 있고, 업계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거센 풍랑 속에서 시가총액 2290억달러(약 305조원) 기업을 이끌게 된 차이충신과 우융밍(吴永铭)은 어떤 사람일까.
◇ 알리바바 구원투수, 차이충신… 골드만삭스·소프트뱅크 투자 유치
11일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10일 자로 차이충신 알리바바 부회장이 회장으로, 우융밍 전자상거래 부문 책임자가 CEO로 교체되는 수뇌부 교체가 완료됐다. 장융은 당초 알리바바 회장 겸 CEO에서 물러나 클라우드 인텔리전스 그룹 회장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이 자리도 우융밍에게 넘기기로 했다. 앞으로 장융은 10억달러(약 1조3300억원) 규모의 기술펀드 운용을 담당한다.
마윈, 장융에 이어 세 번째로 알리바바를 이끌게 된 차이충신은 재무통이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동아시아학과를 전공한 뒤 같은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뉴욕주에서 2년간 세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홍콩에서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투자 지주회사인 인베스터AB 홍콩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 이때 처음으로 마윈과 인연을 맺었다. 마윈에게서 미래를 본 그는 연봉 70만달러(약 9억원)짜리 일자리를 포기하고 마윈과 1999년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차이총신이 알리바바에 합류할 당시 집안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차이총신은 3대에 걸친 변호사 가문 출신이다. 특히 그의 아버지 차이중쩡(蔡中曾)은 대만 최초로 예일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차이충신은 “알리바바가 실패해도 저는 다시 변호사나 투자업계로 돌아갈 수 있다”며 “리스크는 적고 성공에 따르는 이익은 큰 셈”이라고 부친을 설득했다.
월급 500만위안짜리에 불과한 초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은 차이총신은 알리바바의 첫 번째 투자를 유치하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창업 첫 해 차이충신은 골드만삭스가 중국 인터넷 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결국 그해 10월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등으로부터 500만달러를 확보했다. 이 투자 유치로 알리바바는 단숨에 중국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이 됐다.
2000년 인터넷 기업 버블 논란으로 알리바바가 경영난에 직면했을 때, 일본 소프트뱅크 투자를 유치해 회사를 구해낸 것도 차이총신이다. 당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3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알리바바 지분 40%를 요구했는데, 이때 차이총신이 적극 반대해 지분 20%에 2000만달러를 받는 조건이 최종 확정됐다. 차이총신이 없었다면 알리바바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외 알리바바의 금융 시스템 구축, 홍콩 지사 설립, 뉴욕 상장 등도 그의 작품이다. 마윈은 “내 인생에 은인이 4명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차이충신”이라고 했다.
차이충신은 외향적이고 좌중을 압도하는 마윈과 달리 내향적이고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야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2019년까지 중국 언론과는 인터뷰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 우밍화(吴明华)도 알리바바 컨설턴트로 재직한 바 있다. 우밍화 역시 대만 정치계 거물 집안 출신으로, 조부인 고(故) 우싼롄(吴三连)은 정부가 임명한 최초의 타이베이 시장이자 이후 투표를 통해 재선에도 성공한 인물이다.
◇ 우융밍, 알리바바 기술 토대 구축… PC서 모바일 이동 예측
차이충신과 함께 알리바바를 이끌게 될 신임 CEO 우융밍은 대표적인 기술통이다. 저장공과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직후 마윈이 알리바바 이전 창업했던 기업정보 열람 플랫폼 ‘중궈황예(中国黄页)’ 시절부터 힘을 보탰다. 면접 당시 플로피 디스크에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넣어갔는데, 이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융밍은 마윈을 처음 만났을 때 “비즈니스와 비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이자 사람을 전염시키는 힘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융밍은 마윈과 17명의 창업자 중 인터넷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 유일한 인물로, 알리바바, 타오바오의 기술 토대 구축을 담당했다. 이후 2004년 알리바바의 금융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 창업 당시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역임했다. 그룹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모두 우융밍의 손을 거친 셈이다. 2013년 알리바바는 그룹을 25개 사업단위로 나누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 창업공신 중 살아남은 사람이 우융밍 한 명뿐인 것도 이같은 기술 경쟁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술에 더해 비즈니스 이해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중국 내에서 인터넷에서 접속할 때는 주로 PC를 이용했는데, 우융밍은 당시 모바일 단말기로 인터넷 접속 형태가 옮겨갈 것이라며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2008년부터 내부 테스트가 시작됐고, 알리바바는 3년 만에 발빠르게 모바일 버전을 내놓을 수 있었다. 2015년 잠시 알리바바를 떠나 벤처캐피탈(VC)인 위안징캐피탈을 설립하기도 했다.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갖고 있어 그룹 내에서는 우융밍의 ‘우’와 엄마를 뜻하는 ‘마’를 합쳐 ‘우마’라고도 불린다.
◇ 차이충신-우융밍號, 과거 성공방식 탈피 과제
차이충신과 우융밍은 알리바바의 체질을 완전히 뒤바꿔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 3월 그룹을 클라우드인텔리전스그룹, 타오바오·티몰(전자상거래 업체), 현지생활(本地生活·배달 플랫폼), 차이냐오(스마트 물류 그룹), 글로벌디지털비즈니스그룹, 디지털미디어엔터테인먼트그룹 등 6개 독립 사업 단위로 나누는 조직 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직원 약 25만명을 거느린 거대 테크 공룡에서 스타트업으로 회귀를 선언한 것이다.
알리바바가 이같은 변신을 선언한 것은 최근 몇 년 새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된 데 따른 것이다. 글로벌 불황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코로나19가 종료됐지만 중국 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은 여전히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징둥닷컴, 핀둬둬 등 경쟁 전자상거래 기업들도 타오바오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는 점도 경계할 부분이다. 경영권을 넘긴 마윈이 지난 5월 “과거 성공했던 방식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며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 역시 이같은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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