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소련서 당한 강제이주, 조국서 또 당하다니”

김규원 기자 2023. 9. 11. 12: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표지이야기]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밝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사 쿠데타 일으켜봐야 뉴라이트 실체만 드러난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원식 이사장은 육사 독립영웅 5인 흉상 이전 논란에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2023년 9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는 우 이사장. 김진수 선임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육군사관학교 독립영웅 5인 흉상 이전 논란’(육사 흉상 이전 논란)의 최전선에 서 있다.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이번 사건을 가장 먼저 고발했고, 대통령실과 육사를 찾아가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장군 지우기에 맞섰다. 우 의원은 “독립영웅 다섯 분이 한 몸이나 다름 없는데, 홍 장군만 따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23년 9월3일과 9월6일 두 차례 우 의원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뉴라이트는 친일파가 나라 세웠다 생각”

—이번 사건을 가장 먼저 알렸는데.

“2022년 국정감사 때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를 제기했고, 그 뒤 간간이 움직임을 감지했다. 2023년 8월24일 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육사 흉상 이전 이야기를 들어서 독립기념관에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단체들에 연락해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다음날 열리는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확인해달라고 김병주 민주당 간사에게 부탁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우리 사회에 합의된 역사 인식이 있는데.

“뉴라이트와 극우가 합쳐진 게 이번 사태를 일으킨 이들의 역사관이다. 이들은 해방 뒤 정부 수립의 주도권을 쥔 친일파가 나라를 세웠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논란의 연장이다. 그래서 식민지 시절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려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독립운동가들을 ‘반공’으로 문제삼는 것이다. 2018년 3월1일 다섯 분의 독립운동가 흉상을 육사에 모실 때 ‘독립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는데, 이들은 아주 못마땅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들은 누구인가.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고, 최근까지도 목소리를 냈다. 또 최근 기사를 보면 육사의 나종남 교수가 주도했다고 한다. 뉴라이트 성향으로 박근혜 정부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도 참여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유인태 전 의원이 ‘뒤늦게 뉴라이트 의식의 세례를 받은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번 일을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 사람들이다.”

1937년의 강제이주, 2023년의 강제이주

—처음엔 독립영웅 다섯 분을 모두 문제 삼다가 이젠 홍범도 장군만 찍어서 공격한다.

“이념으로 홍 장군만 갈라쳤지만, 실제로는 다섯 명 모두 현재의 육사 충무관 앞에서 옮겨지는 것이다. 육사 충무관 앞에 흉상을 세운 의미는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 광복군이라는 것이다. 흉상을 철거해 네 분은 박물관으로, 한 분은 밖으로 내쫓는 것은 국군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홍 장군이 1937년 소련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했는데, 조국에 와서도 또 강제이주를 당하게 되니 가슴 아프다. 한 몸이나 다름없는 다섯 분 가운데 홍 장군만 따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

—한 몸이라니 무슨 뜻인가.

“이분들이 같은 시대에 함께 활동했다는 뜻이다. 먼저 홍 장군과 김좌진, 이범석 장군은 1920년 청산리전투 때 함께 싸웠던 동지다. 지청천 장군도 1920년부터 서로군정서에서 홍 장군과 함께 활동했다. 또 지청천, 이범석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수로 함께 일했다. 그 학교의 설립자가 이회영 선생이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때 참여한 장교나 병사 가운데 그 학교 출신이 많았다. 1920년 전후 가장 빛나는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다섯 분이다.”

—국방부는 홍 장군에 대해 자유시 참변 때 태도를 문제 삼는데.

“봉오동·청산리 전투 이후 일제가 간도의 동포들을 죽이고 내쫓는 간도 참변을 일으켰다. 그래서 독립군들이 러시아 연해주의 자유시 쪽으로 옮겨갔다. 러시아에서 지원해주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3천 명 넘는 대규모 부대가 들어가니까 러시아 쪽에서 무장 해제를 요구했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고,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그 마찰로 많은 독립군이 희생당했다. 이 일로 간도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홍 장군은 연해주에 남았다. 간도로 돌아가면 동포들의 피해가 일어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때 가해자 편에서 독립군에 피해를 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독립군의 피해 소식을 듣고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는 기록만 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우원식 이사장이 2023년 8월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항일 독립영웅 5인의 흉상 철거 계획 백지화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홍 장군 기념사업회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우당이희영기념사업회,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후손청년회 등이 참여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남은 부하들 돌보기 위해 공산당 가입?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은 어떻게 보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것이 1927년인데, 우리 나이로 60살 때다. 소련 정부의 연금을 받기 위해 가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는 홍 장군이 연해주에 남으면서 군인 생활을 끝내고 집단농장에서 일했다. 이때 함께 남은 부하들을 돌보기 위해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나 싶다. 소련이나 공산당을 위해서 가입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홍 장군은 첫째로 일본과 싸우는 데 인생을 건 사람이다. 둘째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운동한 사람이다. 셋째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기 위해서 늘 겸손하고 유연하게 행동한 사람이었다. 홍 장군을 이념으로 폄하해선 안 된다.”

—강제동원 문제에서 이번 사태까지 윤 정부의 정책을 보면 친일 성향이 있어 보인다. 왜 그럴까.

“사람에 유형이 있는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스타일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일본엔 고개를 숙이고 국내에선 군림하려 한다. 아마도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우리가 잘살게 됐고 산업화 과정에서도 일본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윤 대통령 아버지가 일본 정부의 장학생으로 유학했는데, 그런 집안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일이 내년 총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치적 이익이 있을까. 지지율을 높이려면 국민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홍 장군을 저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나 항일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국민이 좋아하지 않는다. 이념으로 갈라치기 해서 정치적 이익을 보려 했다면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명백히 임시정부에 정통성 있다

—이번 같은 대한민국의 정통성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하나.

“1919년 임시정부 수립도 건국이고, 1948년 정부 수립도 건국이라고 타협하기 어렵다.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확히 돼 있다. 임시정부 시절에 정부 형태나 국방 의무 등 나라의 큰 틀을 다 정했다. 명백히 임시정부에 정통성이 있다. 건국절 논란 때부터 일부 정치인과 학자가 역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 그래봐야 그들의 실체만 정확히 드러난다. 독립운동가들을 모두 빨갱이로 만들 수는 없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게 됐나.

“외조부 김한 선생이 임시정부와 의열단, 신간회 등에서 활동했다. 1938년 소련에서 스탈린의 숙청 때 희생됐고, 스탈린 사후 복권됐다. 어렸을 때는 전혀 몰랐다가 1981년 학생운동으로 감옥에 있을 때 이모로부터 처음 들었다. 그 뒤 기록을 찾아서 외조부의 생애를 알게 됐다. 어머니가 고맙다고 하더라. 외조부는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원래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를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만들어서 이사장을 맡아왔다. 그런데 2018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함께 준비하다가 외조부 이야기를 하니 “당신이 고려인 후손이니 다음 이사장을 맡아라”라고 해서 맡게 됐다.

​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