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26) 고려대 신주영 "몸관리와 경쟁력, 얼리 엔트리 선언한 이유"
#뒤늦게 품은 농구선수라는 꿈, 울산으로 향하다
신주영은 비교적 농구를 늦게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뛰어노는 걸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때 종종 농구 클럽팀에서 경기를 뛰어달라고 할 때마다 일일 선수로 뛰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중학교 때 이미 185cm에 육박할 정도로 키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농구 클럽에서는 그를 필요로 했다.
“키가 크니까 대회 때마다 와서 뛰어달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렇게 가끔 농구공을 잡으면서 재미를 붙였고, 이후 친구들과 농구동아리를 하면서 농구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죠.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지인의 소개를 받아 중학교 3학년 때 울산으로 내려갔어요.”
농구선수라는 꿈을 안고 막연히 울산으로 향한 신주영은 김휴범(중앙대)의 집에서 홈 스테이를 하며 농구를 했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에 농구를 시작한 만큼 유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급 이후 새벽, 오전, 오후, 야간 운동을 감행하며 1년간 몸을 만들었다.
“(김)휴범이와 휴범이 부모님께 너무 감사해요. 정말 친아들처럼 챙겨주셨거든요. 휴범이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렇게 농구를 계속하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농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김현수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다시 3학년이 되고 첫 시합을 뛰었는데 성적도 잘 나왔고 1년 치고는 성장세가 빨랐던 거 같아요(웃음).”
울산 화봉중에서 농구를 시작한 신주영은 서울에 위치한 용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전학으로 인해 징계를 피할 수 없었지만 본가가 수도권에 위치했던 그는 여러 이유와 함께 농구 최고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인 용산고로 상경했다.
“용산고등학교 이세범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좋게 봐주셨고 같이 운동해보자고 하셨어요. 1년 전학 징계를 감수하면서도 용산고를 택한 건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새벽 운동이 따로 없었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운동을 했거든요.”
용산고 유니폼을 입은 신주영은 농구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갔다. 빅맨이지만 슛 연습에 매진했고, 무빙슛도 자유자재로 쏠 수 있을 정도로 성공률을 끌어올렸다. 신주영은 점차 스트레치형 빅맨으로 본인만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이세범 선생님께서 빅맨도 가드들처럼 슛을 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저도 제 강점을 만들고 싶어 슛 연습에 몰두했고, 그때 슛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슛을 장착하니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다양해지더라고요.”
징계로 인해 1년간 폼을 끌어올리는 데 열중한 신주영에게 악재가 닥쳤다. 복귀를 앞두고 있던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대회가 취소된 것. 이에 그치지 않고 팀 훈련 또한 금지 조치가 됐다. 신주영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은 개인 운동에 기대야 했다.
“피지컬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농구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 시간이 어떻게 보면 누구는 놀 수 있고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실전 감각이 부족했던 저는 그 1년을 잘 살려야겠다는 다짐뿐이었죠.”
결국 이듬해 용산고는 초호화 라인업과 함께 전국을 제패했다. 여준석, 박정환, 신주영, 이채형, 김윤성 등 막강한 전력으로 전국 5관왕을 달성했다.
“고등학교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르던 상황에서 운 좋게 U19 월드컵 국가대표로 발탁됐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국가대표로 발탁됐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마냥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 사실에 안주하기보다 세계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하고 자신감을 얻어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죠.”
“어릴 때부터, 농구공을 잡기 전부터 고려대학교는 꿈의 대학이었어요. 농구선수가 되어 당당히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이 값지고 정말 영광스러웠죠. (박)정환이, (여)준석이와 함께 고려대학교로 오게 되면서 좋은 감독님, 코치님들 밑에서 배우고 가족 같은 형들, 동기들, 후배들과 생활할 수 있어 기뻤어요.”
고등학교 때의 활약과 U19월드컵 출전 등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명문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신주영은 신입생 때부터 박정환, 여준석과 함께 출전 시간을 늘려가며 순조롭게 적응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정기전에서도 팀의 골밑을 사수하며 중요한 득점을 쌓았고, 전국체전에서는 상무를 상대로 원맨쇼를 펼치는 등 주가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상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발목과 햄스트링 등 잔부상에 시달렸다. 재활과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결장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결국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잦아지고 팀 내 주전 경쟁에서 입지가 좁아진 신주영은 얼리 엔트리를 결정했다. 기존 BIG3로 꼽히던 문정현-유기상-박무빈과 함께 로터리픽 후보로 예상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얼리 엔트리를 선택한 건 프로에 가서 몸관리를 더 철저하게 하기 위함이에요. 고려대학교에서 적응이 빨라야 팀에 빨리 녹아들고, 그래야 경기를 더 많이 뛸 수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남들보다 더 빨리 프로에 진출해 몸을 만들고 프로 무대에 적응해서 경쟁력을 더 키우고 싶었죠.”
“작년이나 올해 고려대에서 만났던 형들을 보면 각자 장점이 많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특히 (박)무빈이형이나 (문)정현이형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가족같은 느낌, 농구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 운동이 끝났을 때 조언 모두 큰 힘이 됐어요.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 형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죠. 저도 얼른 프로에 진출해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BIG3가 명확했지만 빅맨이 부족했던 이번 드래프트. 얼리 엔트리를 선언한 신주영이 빅맨 최대어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활짝 웃을 수 있을까?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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