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롱과 위로' 사이에 처한 이재명의 단식 투쟁
군사정권도 YS, DJ의 단식투쟁에 정치적 예의 갖춰
이재명 대표 단식에 전복도시락 권유와 "관종DNA" 조롱
여당 대표까지 조롱에 나서는 협량의 정치
법은 법이고 단식은 단식, 정치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여당 대표나 정무수석의 위로방문과 단식중단 촉구 퍼포먼스라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깊고 깊은 철학으로 이해돼야 하지만 무릇 범인(凡人)에게 허탈감을 주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정치권에 회자되는 허탈한 농담 중에 하나가 "단식투쟁으로 실제로 죽은 정치인은 없다"라는 말이다.
그동안 수많은 거물 정치인들이 단식투쟁을 했지만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정치인은 없다.
정치인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은 '단호함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단식투쟁하는 정치인은 죽어야 한다'는 잔혹 동화가 재미있다고 여기는 국민은 물론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식투쟁의 깃발을 처음 꽂은 정치인은 YS다. 1983년 당시 야인이었던 YS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가택연금 상태였던 YS는 무려 23일을 버텼다.
YS의 정치적 동지였던 DJ도 1990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요구하며 1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투쟁했다.
거물 정치인 두 명의 단식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바꿨다.
제1 야당 대표의 단식투쟁은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2009년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 이어 가까이는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감행했다.
초유의 여당 대표 단식투쟁도 있었다.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안 처리에 반발해 민주당 소속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일주일 동안 단식 투쟁했다.
당시 이정현 대표는 문을 잠그고 대표실 안에서 단식투쟁을 벌여 역시 초유의 '비공개 단식'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정치인의 단식투쟁은 주로 야당 대표들이 자신의 의지를 과시하고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며 던지는 마지막 승부수다.
그러나, 때로는 희화화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단식이 11일로 12일 째를 맞았다. 취재온 CBS 기자에게 텀블러 물을 시음하라고 농담할 정도로 멀쩡했지만 10일 농성장에 처음으로 드러누울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힘에서는 이 대표의 단식을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단식장에는 저주와 조롱의 말과 퍼포먼스가 쏟아지고 있다. 관종 DNA라는 저주는 기본이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 텐트 근처에서 수산물 시식회을 열겠다는 말이 나오고 단식중인 이 대표에게 고등어와 전복 식사를 권하는 조롱도 쏟아진다.
그렇지만, 단식투쟁이 유난히 많은 한국 정치사에 이렇게 잔혹한 조롱은 없었다. 군사정권도 YS와 DJ에게 이렇게 대하지 않았다.
YS가 단식할 때 여당인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대신해 위로 방문했다. 물론 단식 중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들고 왔다.
DJ의 단식투쟁 때는 당시 민자당 대표인 YS가 직접 찾았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 때는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이 찾아와 위로했다.
4년 전 황교안 대표가 삭발하고 단식에 들어갔을 때도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방문해 위로하면서 단식 중단을 촉구했다.
적어도 야당 대표의 단식에 당시 여권은 예외없이 위로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한국 정치사에서 어쩌면 불문율 같은 일종의 정치적 예의였다.
지금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보면 간단하다. 그들만을 위한 단식, 그 한 사람만을 위한 단식으로 보는 시각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정치병인 진영논리가 뿌리깊게 박혀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겠다"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지만 집권 여당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식투쟁을 위한 역사적 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법은 법이고 단식은 단식이다.
지금 이재명 대표가 죽겠다고 단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야권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정치로 보고 정치적 예의로 대응하는 여당의 아량이 아쉬운 것이다.
"지금 단식하고 계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김기현 대표의 말이 참으로 협량의 정치로 보인다.
단식투쟁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라도 한번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의 단식장을 찾아가 위로한들 그다지 어색해 보일 것이 없다.
김기현 대표나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이재명 대표를 찾아가 위로하면서 단식중단을 촉구하는 것도 권력을 가진 자의 아량의 정치임을 지난 정치사가 입증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투쟁은 지금 조롱과 위로 사이에 처해 있다. 그 안에 정치가 끼어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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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 kgw2423@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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