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탐정 포와로의 추리 본능 자극한 것은?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케네스 브래너의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가 돌아왔다.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오리엔트 특급열차(오리엔트 특급 살인)를 거쳐 나일 강을 유유히 떠다니던 초호화 여객선(나일 강의 죽음)을 지나 이번에는 유령들이 득시글거린다는 베니스의 고풍스러운 저택이 배경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핼러윈 파티'를 기반으로 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고전적 추리물이지만, 제목에 등장하는 유령에서 느껴지듯 호러 요소가 짙은 것이 특징이다.
안개에 쌓인 베니스의 풍광을 훑다가 느닷없이 새들 사이로 달려드는 포식자의 모습을 비추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서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천재 명탐정의 명성을 뒤로 하고 은퇴자의 삶을 살고 있다. 집 앞으로 몰려드는 사건 의뢰를 뒤로 한 채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고, 하루 두 번 빵을 배달 받으며 고요하게 사는 삶. 추리 본능이 잠들었던 평화로운 그의 은퇴 일상을 깨운 건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아리아드네 올리버(티나 페이)의 방문이다. 올리버는 죽은 영혼을 불러 대화한다는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양자경)의 정체를 밝혀 달라며, 유령들이 깃들었다고 소문난 저택에서 벌어지는 교령회(유령을 부르는 강령술)로 초대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공간과 그 속을 채우는 다채로운 인물군상이 돋보인다. 달리는 열차와 유람하던 배를 지나 이번에는 한 곳에 정착해 있는 오래된 저택이 배경이지만, 폭우로 누구도 오갈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이란 점은 여전하다. 저택의 주인이자 교령회를 의뢰하는 오페라 가수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는 1년 전 죽은 딸 알리시아의 목소리를 듣고자 심령술사 레이놀즈를 초대한다. 그런데 교령회에서 레이놀즈는 알리시아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고 외최고, 급기야 교령회 이후 저택을 떠나려던 레이놀즈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
저택에는 포와로와 함께 저택을 찾은 아리아드네 올리버, 알리시아의 주치의였던 의사 레슬리 페리에(제이미 도넌)와 그의 어린 아들 레오폴드(주드 힐), 가정부 올가(카밀 코탄), 알리시아의 전 약혼남 맥심(카일 앨런), 레이놀즈의 조수인 데스데모나(엠마 레어드)와 니콜라스(알리 칸), 그리고 알리시아의 죽음을 처음 발견했던 전직 경찰이자 현재 포와로의 경호원(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이 있으니, 죽은 레이놀즈와 포와로를 제외하면 9명의 용의자가 있는 셈이다.
사실 '회색 뇌세포'를 작동시켜 이성적으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포와로에게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한다는 심령술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령회가 열리는 저택에서 포와로는 평소 그의 신념과는 위배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고, 낯선 것을 보고 그에 반응하는 등 포와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의 묘미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은퇴한 포와로, 신념이 흔들리는 포와로, 인간적인 모습의 포와로 말이다. 그러면서 관객 또한 의심하게 된다. 정말 유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있는 걸까?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보다는 원작의 명성이 덜해 관객들의 추리욕을 한층 돋운다. 아카데미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각본가 마이클 그린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핼러윈 파티'를 토대로 하되 '마지막 교령회'를 적절히 섞어 반전에 반전을 꾀한다. 그러나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추리보다 추리의 대상인 인물들의 이면과 스토리에 집중한다. 많은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건 배우들의 몫.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맞은 양자경이 초반 극에 긴장감을 불러 넣고, 티나 페이와 카밀 코탄, 켈리 라일리와 엠마 레어드 등 존재감 넘치는 여배우들이 이를 지속시키는 형국이다. 특히 케네스 브래너와 양자경, 케네스 브래너와 티나 페이의 합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케네스 브래너와 함께 '벨파스트'에서 합을 맞췄던 아역배우 주드 힐의 호연도 눈에 띈다.
세련된 영상미와 공포를 극대화하는 음악과 사운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다. '체르노빌' '조커' '타르' 등으로 이름을 날린 음악감독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존재감을 영화 내내 실감할 법하며, 숨가쁜 추리가 잦아들어갈 때쯤이면 산마르코 광장과 시계탑 등 베니스의 화려한 명소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103분, 12세 관람가로, 9월 1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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