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 날리는 무대 위 한남자...“출산 후 한달만에 왔어요”

2023. 9. 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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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미, 뮤지컬 ‘프리다’ 1인2역
여성 관객에 “번호 뭐야?” 능청
현란한 탭댄스 천하의 바람둥이로
출산 한 달 만에 복귀한 뮤지컬 배우 전수미가 뮤지컬 ‘프리다’에서 탭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화려한 발놀림으로 심장박동을 뛰게 하는 짜릿한 탭 소리가 요동쳤다. 뮤지컬 ‘프리다’의 명장면 ‘허밍 버드’에서다. 영혼을 갈아넣은 탭댄스를 마친 후엔, 천하의 바람둥이로 변신한다. “자기야, 혼자 왔어? 번호 뭐야?” 1열 여성 관객을 향해 전매특허 ‘윙크’를 휘날리는 이 남자, 아니 이 여자. 멕시코의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다. 능글맞지만 느끼하지 않고, 얄밉고 황당한데 매력적인 한 남자의 생이 배우 전수미의 연기로 되살아났다.

뮤지컬 ‘프리다’(10월 15일까지) 공연 전 서울 코엑스 아티움에서 만난 그의 표정이 밝았다. 출산 한 달 만에 ‘빛의 속도’로 복귀한 배우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량이 나왔다. 전수미는 “워낙 사랑받는 작품인 만큼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력은 관객들의 평가로 돌아왔다. 디에고의 탭댄스에 눈과 귀가 홀리고, 능청스러운 애드리브에 사랑에 빠진다.

뮤지컬 ‘프리다’는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을 토크쇼 형식으로 꾸민 작품이다. 무대에는 오직 네 명의 여배우만 등장한다. 프리다가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프리다를 압도하는 존재감을 발하는 배우는 단연 전수미다.

무대 위 전수미는 무척이나 바쁘다. 프리다의 마지막 순간에 열리는 ‘더 래스트 나이트 쇼(The Last Night Show)’의 사회자인 레플레하와 디에고 리베라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1인 2역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 디에고는 짧지만 강력한 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어려운 역할이다.

신체 움직임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탭댄스를 춰야 하고, 디에고에 빙의한 듯 끊임없이 관객을 향해 ‘플러팅’을 날린다. 이 역할을 연기하려고 인터넷을 뒤져 느끼한 멘트와 아재 개그를 찾아봤다. 천하의 호색한임에도 ‘밉지 않은 디에고’가 된 것은 다 그의 공이다.

초연 때부터 함께 하며 ‘프리다’의 인기를 견인해온 전수미는 출산 후 복귀작에 고심이 깊었다. 그는 “출산 이후 한 달 만에 밖에 나가니 다리가 컨트롤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며 “9㎝의 힐을 신고 뛰어다니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하지만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두 배 이상의 노력을 들였다. 그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노력해 다듬어야 마음이 편해진다”며 “그래서 뭔가를 더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아야 할 탭댄스는 더 화려하고 현란해졌다. 리듬은 잘게 쪼갰고, 박자마다 탭을 업그레이드했다. 보이지 않는 ‘수련의 시간’들은 무대 위에서 증명됐다. 이 장면은 ‘프리다’ 속 부동의 ‘명장면’이다.

소녀 시절의 전수미는 사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노래하고 율동하는 것이 좋아 교회 성가대에 나갔다. 10대 소녀가 ‘공식적으로’ 노래와 춤을 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였기 때문이다.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운 것은 ‘캣츠’를 보고 난 뒤였다. 그제야 연기와 노래, 춤을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사라진 신시뮤지컬컴퍼니의 단원으로서 뮤지컬 세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2000년 ‘아가씨와 건달들’. 수많은 ‘아가씨들’ 중 한 명이었던 앙상블 배우 전수미의 첫 작품은 치열했다. 맨발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 ‘대못’이 발에 박혔다. 그는 “무대 위에선 아픈지도 모르고 춤을 췄는데, 내려오고 나니 피가 철철 났다”며 웃었다.

앙상블 배우에서 첫 주연을 맡기까진 4~5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짧고, 누군가에겐 긴 시간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해 쉬지 않고 작품을 했다”며 “한 방에 주연을 맡았다면, 금세 바닥을 드러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매순간 차곡차곡 내공을 쌓은 그는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모습을 꿈꾼다. 매일 올라가는 똑같은 공연도 매일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 관객에게 주는 선물이자 존중이라고 생각해서다.

“뮤지컬엔 매일 보러오는 N차 관람객이 많아,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만들려고 해요. 손 동작, 발 동작, 시선을 달리하고, 센스있는 애드리브를 생각하고요. 매일 봐도 매번 신선하고 재밌는 공연이면서, 항상 제가 맡는 역할에 딱 맞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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