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대못] 매각하고 지정 철회… 원전 지을 땅이 없다
원전 예정 부지 0곳… “땅부터 확보해야”
작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면 폐지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새 정부는 2018년 65%까지 추락했던 원전 가동률을 81%대까지 끌어올리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을 추진하며 원전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위해 심어놓은 대못 탓에 원전 산업 정상화는 예상보다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원전 산업 회복에 걸림돌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신규 원전 백지화를 추진하면서 경상북도 영덕군 천지 원전 1·2호기 건설 예정 부지가 공매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 삼척 대진 원전 1·2호기 부지는 지정이 해제됐다. 총 4기의 원전 건설 개발이 취소되면서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원전 개발 예정 부지는 ‘제로(0)’가 됐다.
11일 에너지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11년 9월 영덕읍 석리, 매정리, 창포리 일대를 천지 원전 1·2호기 건설 예정지로 지정했다. 이에 한수원은 전체 면적의 약 18%인 58만7295㎡(약 17만7656평)를 48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2018년 6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백지화했다. 그해 7월 영덕은 원전 개발 예정 지역에서 철회됐다.
이후 한수원은 이사회에서 ‘천지 원전 매입 부동산 매각안’을 의결했다. 부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의뢰해 공매가 진행됐다. 공매 부지는 지정과 철회가 반복되는 등 개발이 제한되면서 약 1.1%만 매각됐다. 한수원은 추진 중인 부지 용역과 환경영향평가 등이 중단되면서 약 30억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부지는 남겨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지까지 서둘러 매각한 것은 원전을 다시 지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원전 부지 해제에 대한 후폭풍도 상당했다. 영덕군은 신규 원전 건설 취소에 따른 직·간접 경제적 피해 규모가 3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9년 영덕 주민들은 청와대로 몰려가 탈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영덕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대가로 2014~2015년에 409억원의 원전 특별지원금을 지급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선언과 함께 관련 지원금을 회수했다. 영덕군은 지난 4월까지 산업부와 법정 다툼을 벌였지만, 결국 패소했다.
대진 원전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진 원전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부남리, 동막리 일대 317만8454㎡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2012년 원전 개발 예정 부지로 지정됐다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6월 지정이 철회됐다. 한수원이 부지를 매입하진 않았지만, 개발 계획이 중단되면서 인허가 및 광고비 등으로 약 70억원을 날렸다.
정부는 삼척시를 ‘수소생산기지구축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수소 거점 도시로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원전 부지로 지정되고 해제되는 동안 개발이 제한돼 인근 주민은 재산권이 침해됐다. 방치된 부지는 황무지로 전락했다.
윤석열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면서 영덕 후보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미 환경영향평가 등이 진행돼 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매로 넘어간 땅은 다시 사거나 설계를 바꿔야 해 추가 비용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범진 원자력학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은 “지난 정부에서 원전 건설 부지를 매각하고 개발 계획을 철회하면서 원전을 지을 수 있는 부지가 사라진 상황”이라며 “새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원전 사업이 빠르게 실행되기 위해서는 원전 부지 확보나 절차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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