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GPA 환산식, 우리 학교는 언제 바꿔주나요”

이승주 인턴기자 2023. 9. 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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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같아도 GPA 환산식 따라 1점 차로 당락 갈릴 수도
2021년부터 연쇄 개정 바람…미개정 학교만 발동동
정치권 ‘공정 학점’ 도입 논의…시점도 가능성도 불투명

(시사저널=이승주 인턴기자)

한 대학교의 학생들이 캠퍼스를 걸어가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없음). ⓒ연합뉴스

"우리 학교 출신은 로스쿨 입시에서 불리함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재록(가명·25)씨가 학교 커뮤니티에 올린 글의 첫머리다. 중앙대학교 교내 로스쿨 준비반 스터디룸에서 만난 김씨는 학교마다 제각각인 GPA 환산식이 특정 학교 출신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며 성토했다.

GPA는 대학 4년간 받은 성적의 평균을 백점 만점으로 환산한 점수다. 대학마다 학점의 만점 기준이 4.5점, 4.3점, 4.0점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를 백분위로 환산한 것이다. 이렇게 환산된 GPA는 주로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 취업 등에 활용된다.

특히 로스쿨 입시에서 GPA는 중요한 요소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소위 '학토릿'이라고도 불리는 △학점 △공인영어성적(토익)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성적이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학점과 리트 점수가 높을수록 입시에 유리하다.

문제는 학점을 나타내는 GPA 환산식이 대학교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학점을 받더라도 각 대학의 환산식에 따라 1점 이하의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 로스쿨 수험생들의 불만이다.

"GPA 1점 차이로 등수 20계단 떨어져"

김씨는 로스쿨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어떤 학교에 지원하는지 실시간 현황이 나와 있는 페이지를 보여줬다. 해당 페이지에는 성적에 따라 지원자들의 등수가 나누어져 있었다. 김씨가 지원하려는 로스쿨의 지원 현황을 기준으로 봤을 땐, GPA가 1점 낮아지면 전체 점수도 0.18점 떨어진다. 등수가 20등이 넘게 밀렸다. 김씨는 "지원자들의 성적이 매우 촘촘하게 분포돼 있어 근소한 점수 차이로도 당락이 갈린다"고 설명했다.

로스쿨 입학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행한 2024학년도 법학적성시험에 1만5647명이 응시했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응시자 수도 9년 연속 증가세다. 응시자는 매년 느는 반면 로스쿨 정원은 2100명가량으로 한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1점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김씨는 "동일한 학점을 받고도 GPA 환산식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것이 매우 불공정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환산식으로 인한 불이익 논란이 제기되자 대학가엔 'GPA 환산식 개정' 바람이 불었다. 2021년 서울시립대와 한국외대가 GPA 환산식을 개정했고 지난해 8월엔 경희대가, 10월엔 연세대가 개정에 나섰다. 올핸 고려대, 서울대, 한양대, 성균관대, 이화여대가 개정 행렬에 동참했다.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점수 차이가 나는 곳이 있다. 서울대는 지난 6월 환산식을 개정했지만 같은 4.3만점 체제 대학인 연세대에 비해 0.7점이 적은 점수로 환산된다. 이에 대해 서울대 학사팀 관계자는 "개정 목적 자체가 점수 상승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구간이 일정하지 않았던 기존의 환산식을 통일할 목적이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타 대학에서 조정하는 것까지 다 반영해 점수를 올리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환산식을 바꾸지 못한 곳도 있다. 아직 환산식을 개정하지 않은 중앙대학교는 서울 주요 대학 중 가장 낮은 GPA 점수를 받게 된다. 중앙대 학사팀 관계자는 "(개정에 대해) 현재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으며, 4.5만점인 대학들이 모두 환산식을 개정한 만큼 그에 맞춰서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타 대학과 동일한 환산식을 적용하려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무작정 환산 점수를 높인다고 유리한 게 아니다. 환산식 자체의 기울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중앙대가 환산식을 개정하더라도 2024학년도 로스쿨 원서접수 기간 안에는 어려울 전망이다. 내년도 로스쿨 원서접수 기간은 오는 18일부터 22일까지다. 중앙대 학사팀 관계자는 "가능한 빨리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없어서 고민"이라고 밝혔다.

연쇄 환산식 개정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려대 재학생 박아무개씨(24)는 "점수 체계를 손바닥 뒤집듯이 자꾸 바꾸면 학생들 혼란만 가중시킨다"며 "대학생들이 입시만을 위해서 성적을 바꾼다는 안 좋은 이미지도 생길 것 같다"고 걱정했다.

국민의힘 청년정책네트워크 출범식 ⓒ국민의힘

정치권서 논의된 '공정 학점' 도입은 미지수

환산식을 놓고 대학가에서 불만이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자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지난달 국민의힘 청년정책네트워크 특별위원회에서 학교별로 환산식이 달라 생기는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공정 학점 제도'를 마련한다는 소식을 전해진 것이다. 공정 학점 제도로 논의되는 내용은 △교육부 차원에서 'GPA 통합 환산식'을 만들거나 △대학별로 GPA 환산식을 공개하는 방안 △환산점수를 활용하는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기준을 세우는 방안 등이다.

하지만 '공정 학점' 도입은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공정 학점 제도에 대해 "교육부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라며 "개별 대학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해 아직은 말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원서 접수 전까지 추진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엔 "올해 로스쿨 입시에는 적용이 안될 것"이라고 답했다.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로스쿨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 의식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면서도 "학부가 아닌 각 로스쿨에서 공정하게 GPA를 산출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학별 GPA 환산식을 통일하자는 논의에 대해 올해 7월 국민의힘과 당정 협의를 진행했지만 각 대학들이 학칙에 의해 자율적으로 정하는 사안이라 교육부가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자체 대안을 마련한 곳도 있다. 고려대학교 로스쿨은 2024년 모집요강에 개별 대학의 GPA 환산식을 따른 점수를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백점 만점으로 환산된 점수가 아닌 대학 학점 자체를 반영하도록 바뀐 것이다. 고려대학교 로스쿨 관계자는 "올해 교육부에서 법학전문대학원들에 GPA 환산점수에 대해 이슈가 발생하고 있으니 공정성 측면에서 대안을 마련하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이에 대응해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학점은 그대로인데 왜 학교마다 자체 기준을 바꿔 점수를 올리려고 하는가"라며 "모 대학을 필두로 주요 대학들이 모두 점수를 올리는 건 일종의 치킨게임"이라고 밝혔다.

전국 25개 로스쿨 중에 고려대 로스쿨처럼 자체 GPA 환산 기준을 마련한 학교는 중앙대, 한국외대, 이화여대 등 8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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