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폭주’ KIA, 경기당 도루 2.4개&성공률 91.7%…이종범·이순철 시대의 부활

KIA 박찬호. 연합뉴스

KIA 김도영. KIA 타이거즈 제공

1회 1사 1루에서 타석에는 KIA 왼손 강타자 나성범. LG 우완 최원태의 초구 147㎞짜리 직구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발 빠른 1루주자가 2루로 뛰는 것을 계산에 넣은 볼배합이었다. LG 포수 허도환 2루 송구 동작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접전 또는 아웃도 가능한 타이밍. 그러나 주자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밀고 들어가는 순간, 2루심을 향하던 모두의 시선에 긴장감이 뚝 떨어졌다. 2루심은 당연한 듯 두 팔을 벌리며 세이프를 선언했다.

지난 10일 광주 LG-KIA전 1회였다. KIA는 김도영의 도루로 찬스를 키운 끝에 2점을 선취했다. 김도영은 ‘대도’에게 필요한 ‘3S(스피드·센스·슬라이딩)’를 모두 갖췄지만, 그중에서도 스피드를 그대로 살려 베이스까지 치고 들어가는 슬라이딩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1990년대 KBO리그에서 가장 빨랐던 타이거즈 선배 이종범(현 LG 코치)을 연상시키는 재목으로 종종 조명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KIA의 최근 오름세는 이종범이 데뷔했던 1993년 해태 야구를 떠올리게 하고도 있다. 해태는 1983년을 시작으로 독식하듯 우승 횟수를 늘렸지만 1993년 승리 방식은 조금 달랐다. 그해는 1985년부터 해태 뛰는 야구를 주도한 이순철과 ‘뜨는 해’ 이종범이 해태의 우승을 향해 뛰는 야구로 ‘공조’했던 시즌이다.

그해 이종범은 도루 73개를 기록했다. 1991년 56개 1992년 44개의 도루를 했던 이순철은 톱타자를 내주는 등 변화 속에 페이스가 조금 처졌지만 도루 29개로 저력을 과시했다. 두 선수가 기록한 도루만 102개에 이르렀다.

1996년의 해태 이종범. 경향신문 DB

1995년의 해태 이순철. 경향신문 DB

해태는 그해 승률 0.655(81승3무42패)로 통합우승을 기록했다. 그해 홈런 13개를 때린 한대화와 홍현우 등 중심타자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20홈런 이상을 때리는 거포는 타선에서 사라졌던 시대. 오히려 이종범(16개)과 이순철(11개)이 기동력에 화력까지 곁들이는 팔방미인형 야구로 새로운 팀 색깔을 만들었다. 그 힘으로 독주할 수도 있었다.

최근 9연승 이후 2경기를 연속 내줬지만 다시 3연승으로 고개를 든 KIA의 9월 야구가 그때 해태 야구와 닮아있다. KIA는 9월 들어 9경기에서 도루 22개를 기록한 가운데 성공률 91.7%를 기록하고 있다. 9월 들어 KIA 다음으로 도루가 많은 팀은 13개의 LG로 KIA의 절반 수준이다. 더구나 LG의 성공률은 65%에 그쳤다.

테이블세터 박찬호와 김도영은 ‘뛰는 야구’를 주도하고 있다. 9월 들어서는 박찬호가 6개, 김도영이 5개의 도루에 성공했다. 이 기간, 박찬호는 딱 한 차례 실패 기록을 남겼고, 김도영은 100% 성공률을 찍었다.

두 선수는 발뿐 아니라 눈으로 방망이로 팀 공격력을 리드하고 있다. 박찬호는 9월 타율 0.342에 OPS 0.881, 김도영은 9월 타율 0.306에 OPS 0.922를 기록하고 있다.

타이거즈 시대의 주역이기도 한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KIA가 시즌 끝까지 상승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이유 중 하나로 테이블세터진의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을 꼽고 있다. 이 위원은 “뛰는 야구를 할 줄 아는 두 선수를 통해 득점 루트를 다변화할 수 있다”며 몇몇 타자들의 페이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KIA는 개막 이전 꿈꿨던 야구를 지난 8월 말부터 펼쳐내고 있다. 잔여 30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2위 KT와는 2게임 차의 4위. 아직 늦지 않았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