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피카, 아직은 고집을 좀 부리고 싶어요

이재훈 기자 2023. 9. 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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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 톺아본 정규 음반 '이온' 호평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3'서 주목
[철원=뉴시스] 씨피카. (사진 = 알프스 제공) 2023.09.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철원=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렉트로닉-팝 아티스트 씨피카(CIFIKA·조유선)의 음악은 단순히 전자음이 아니다. 2015년 11월 무료 글로벌 음악 공유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에 벼락처럼 등장한 그녀는 인문학, 철학, 과학을 아우르는 세계관으로 전자 음악의 다른 차원을 펼쳐왔다.

지난 3월 발매해 '회복탄력성'을 톺아봤던 정규 음반 '이온(ION)'이 그 증거다. 판타지·과학의 이종 교배로 감정의 이중성을 살펴본다. 엔트로피의 변화무쌍함을 연동시켜 음악을 불협화음을 분출한 뒤 오히려 삶의 균형 잡힌 화음을 파고든다. 충돌하는 항(項)들을 통해 무해한 삶의 가치를 생포하는 일. 씨피카가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선사하는 인식의 장이다.

씨피카는 지난 2일 강원 철원 고석정 일원에서 펼쳐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3'에서도 이런 정경을 보여줬다. 자신의 사운드 클라우드에 처음 올린 곡을 기억하는 팬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그 자리에서 벗어 던져주는 과감함과 다정함. 그녀의 성향은 자신의 음악과 참 닮아 있었다. 다음은 당일 공연 직전 만나 씨피카와 나눈 일문일답.

-DMZ 피스트레인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시더라고요. 기존 페스티벌과는 다른 성향의 축제니까 씨피카 씨랑 더 잘 어울립니다.

"한국엔 저랑 음악적으로 완전히 어울리는 페스티벌이 많이 없더라고요. DMZ 피스트레인은 라인업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연령대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점이 너무 좋아 꼭 참여 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연령대가 어우러진다는 건 어떤 지점에서 흥미로운 건가요?

"보통 한국에서 열리는 음악 행사들은 젊은 사람들 위주로 많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DMZ 피스트레인은 아티스트 라인업부터 관람객들도 너무 다양한 층이 있어요. 그 분들이 다 같이 어울려 노는 분위기죠. 도착해서 (고석정 입구) 분수대 앞 광경을 구경하고 왔거든요.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맞춰) 젊은이들 뿐 아니라 꼬맹이들하고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춤을 추는 풍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서울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라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공연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하하."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대학로극장 쿼드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을 하셨잖아요. (블랙박스 극장인) 쿼드 공연은 너무 좋았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앞뒤가 없는 포맷이 너무 좋아서 또 하고 싶어요. 공간 내 사운드 울림도 잘 잡혔는데 엔지니어 분이 너무 잘해주셨어요. 처음이랑 끝이 없는 무대 자체도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연할 때 막 돌아다녔죠. 관객이 아티스트의 앞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옆모습, 뒷모습 다 볼 수 있고 같이 무대에 선 세션들도 각자 각도에서 스팟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주 공정했어요. 그런 무대가 좀 많아졌으면 합니다."

-페스티벌처럼 사방이 트인 공간에선 사운드의 입체감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실 거 같아요.

"이번 페스티벌에선 이전에 발매했던 곡 위에 공간계를 좀 넓게 만들어 이펙트를 넣어서 준비를 했어요. 좀 더 멀리 울려 퍼지는 분위기가 날 수 있게요. 사운드를 뾰족하게 잡는 것보다는 울림이 많은, 메아리 치듯이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전자음악은 건축학적인 구조가 중요한 거 같아요.

"전 구조적이거나 계산적으로 작곡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공간의 구조에 대해선 아는 게 중요하죠. 강원도는 산(山) 안이잖아요. 그래서 산울림처럼, 메아리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어요."

[철원=뉴시스] 고석정 분수무대. (사진 = 피스트레인 제공) 2023.09.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 에너지는 올해 상반기에 발매하신 수작 '이온'(ION)을 통해 전했던 엔트로피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 공간은 열역학적으로는 팽창밖에 못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퍼져 나갈 수밖에 없죠. 건물이 많이 없어 중간에서 튕겨내는 게 없으니까요."

-씨피카 씨는 물리학, 화학, 천체학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음악에 반영을 해오셨어요.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과학 잡지를 읽어요. 최근에 인상적으로 읽은 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인류 최대 적외선 우주망원경)이에요. 우리가 못 봤던 은하가 '어떤 물질들로 이뤄져 있는가'에 대한 뉴스를 보는 걸 너무 좋아해요. 전문적으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 공부에 더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천체물리학자가 됐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하하. 그래서 우주를 음악과 많이 연관 지으려고 해요. 가사뿐만 아니라 작곡할 때도 배경을 우주로 두는 경우도 많고요."

-물질로 이뤄진 우주, 자연 등에 많은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나요?

"영감을 받기 너무 쉬운 소재예요. 자연은 무한이니까, 무한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자연을 너무 좋아해서라기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고 오리지널로 갈 수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효율성과도 연결이 되나요?

"네 효율적이에요. 빠르게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나뭇잎 하나라도 생긴 게 다르니까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얻어오는 게 제일 편하죠."

-그렇게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시니까 협업도 유연하세요. 최근 레드벨벳 슬기 씨랑도 작업을 하셨고, 앞서 '혁오'의 오혁, 신해경 씨랑도 작업을 하셨죠.

"전 장르에 편견을 안 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냥 음악이 좋거나 그 음악가가 좋거나 음악가가 가지고 온 아이디어가 좋으면 바로바로 작업을 결정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결정의 바탕엔 순수함도 있는 거 같아요.

"사실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어요. 순수함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순수함을 유지하려면 포기해야 될 것들이 많더라고요."

-국내 대중음악은 아무래도 한 방향으로 쏠린 측면이 커 그 균형을 맞추기도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씨피카 씨는 분명 상업적으로도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곡들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철원=뉴시스] 'DMZ 피스트레인' 씨피카. (사진 = 피스트레인 제공) 2023.09.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흥행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해봤는데 그건 또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지점이 항상 고민이에요. 오늘도 고민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만들어서 돈을 버는 건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한 의미랑 너무 많이 다르거든요. 상업적 제안도 받긴 해요. 분명 아이돌 프로덕션이랑 작업하면 이름도 금방 알려질 수 있잖아요. 근데 그건 제가 아이돌 음악에 참여한 거죠. 제 이름으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아직은 (이 방향으로 더) 고집을 좀 부리고 싶어요."

-그러면 지금까지 스피카 씨가 믿고 있는 방향성으로 음악을 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평소 협업을 너무 하고 싶었던 아티스트들이 흔쾌히 같이 하겠다고 하거나 먼저 제안을 할 때죠. 제 것을 계속 지켜내면서 여기까지 온 게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사실 외국에 나가면 더 느껴요. 분위기도 좋고 반응도 정말 좋았고요. 제가 만드는 제 길을 응원해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청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이 어우러져 공감각적 심상을 선사하는 것도 씨피카 씨 음악의 매력입니다.

"네 제게 청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건 몸이랑 마음처럼 붙어 있어요. 좀 웃긴 말이긴 한데, 음악적 완성도가 조금은 덜하더라도 시각적으로 보충을 할 수 있어요. 음악이 너무 어렵거나 세서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 시각적인 것이 그 부분을 덜어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청각, 시각은 서로 밸런스를 맞춰주는 보완재이기도 하죠. 사실 제가 미술을 공부한 시간이 더 길기도 해요.(씨피카는 미국 대학에서 광고미술을 전공했다.)

-지난 3월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음반 '이온'의 주요 메시지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었는데 이 앨범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됐습니까?

"일단 제가 회복하는 데 에너지를 정말 많이 썼거든요. 최근 몇 년간 무너진 제 정신이라든가 상태를 복귀시키는데 굉장히 공을 들였고, 제 음악을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그걸 다시 돌려주는 느낌의 음반이라 에너지가 정말 꽉 차 있어요. 이전 앨범에선 제 취향을 좀 더 드러냈어요. '전 이런 거 좋아하고, 전 이런 생각을 해요'라고 전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이랬어요'라는 말을 전하는데 치중했죠. 그래서 이전엔 미래지향적이었다면 이번엔 과거형 앨범이에요. 이 앨범을 만들기 전 제가 좌절을 처음으로 겪어봤거든요. 이번 앨범의 제일 큰 영감은 제가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돌아온 제 정신력인 것 같아요. 그 회복의 정신력 근원은 과거에 있었던 거죠."

-앞서 다른 많은 분들이 언급하셨지만 씨피카 씨 음악은 다차원적입니다. 향후 프로젝트도 어떤 차원으로 나갈 지 기대가 커요.

"우선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2개가 있어요. 하나는 '하이퍼 팝(Hyper pop)' 영향을 받은 EP예요. 또 다른 하나는 콰이어 뮤직이라고 하는데 합창 코러스 음악을 앰비언트랑 일렉트로닉이랑 합쳐서 선보이는 거예요. 콰이어 뮤직은 외국 등지에서 공연할 때 세션들이 항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착안했어요. 저를 복사해서 여러 명을 두고 '내가 내 세션을 해주자'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이걸 또 시각적으로 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홀로그램 같은 것도 구상 중입니다."

-되게 재밌겠네요. 씨피카 씨는 진짜 아이디어가 넘치시는 것 같아요.

"제 직업이니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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