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상 3연속 수상 강병규 “코로나와의 분투, ‘존애원’에 맞닿아”[이사람]
강석봉 기자 2023. 9. 11. 09:45
“지방방송, 좀 꺼라!”
흔히 친구들 농지거리에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이다.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저리했으면 말이다. ‘매스’의 시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오만함은 가성비란 시쳇말로 방송판에 잔혹한 ‘메스’를 가했다. 도려내진 것 중 하나가 라디오 드라마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아빠의 얼굴’ 등 어린이 라디오 드라마가 1970년대 전파를 타면서 수많은 드라마가 제작됐지만, 화려한 TV시대는 추레한 그들의 자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기억 속에도 라디오 드라마가 잊힐 즈음,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드라마’가 지방방송 안동MBC(사장 유재용)에서 부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의료기관 존애원의 ‘존심애물(存心愛物)’ 정신을 그린 라디오드라마 ‘존애원 낙강에 뜬 달(극본 김순희, 연출 강병규)이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하는 제50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안동MBC의 창사특집 ‘존애원 낙강에 뜬 달’은 지난해 9월 13일(화) 첫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평일 저녁 매회 15분씩 10주간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599년 설립되었던 존애원은 상주지역 13개 문중이 뜻을 모아 ‘존심애물(存心愛物)’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전쟁과 기근에 지친 백성들을 치료하고 구휼했던 기관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안동MBC는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별기획 라디오드라마 ‘임청각’, 2020년 6.25 한국전쟁70주년 특별기획 ‘낙동강 전선’에 이어 이번 ‘존애원 낙강에 뜬 달’로 세 번째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모두가 강병규 PD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직한 노력으로 지역방송의 역사를 새로 쓴 강병규 PD의 이야기를 ‘지방방송’ 켜고 들어봤다. 1인치 지방방송이란 고정관념의 벽을 넘으면 지역을 아우른 세상이 열리더라.
대중들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라디오드라마로 방송대상 작품상 수상, 축하한다
“감사한 일이다. 라디오드라마를 중앙 지상파에서도 잘 들을 수 없는데 지역방송사가 제작한 라디오드라마로 큰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드라마는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나?
“지난 2014년이었다. 경북의 역사문화유산을 소재로 ‘정신문화기획시리즈 오래된 약속’이라는 5분 내외의 짧은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래된 약속의 네 번째가 ‘존심애물의 정신 존애원’이었다. 우리 지역 상주에 이어져 오고 있는 최초의 사설의료기관 존애원의 정신을 새길수록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싶었다. 그 이후로 다큐멘터리도 직접 제작해 봤었고, 존애원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도 만나보았다. 좋은 이야기는 지속해서 콘텐츠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마음을 지키고 길러 타인을 사랑한다’는 존심애물 정신을 이번에는 보다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라디오드라마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되었다.”
왜 존애원인가?
“1592년 음력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열흘도 안 돼 상주는 함락되었다. 경상도 지역 중 임진왜란의 피해가 심각했던 상주는 7년여 전쟁이 끝난 이후 기근과 역병이 창궐했고, 1599년 상주의 13개 문중은 십시일반 재물과 뜻을 모아 존애원을 건립했다. 당시로는 중앙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터라 지방 사족들의 이러한 행위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역할이나 마찬가지였다. 존애원은 병든 향민들을 치료하고 구휼하며 나중에는 교육기관으로 역할까지 수행했다. 이러한 존심애물 정신은 지금도 이어가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데, 마침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펜데믹이 다시 존애원을 돌아보게 했다. K-방역으로 대표되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은 시점에 프로그램을 자문해주고 있던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장인 이상호 박사는, 19세기에 들어서야 ‘공공의료’ 개념이 정립된 서양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사례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은 단출한 건물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17세기 초에 이미 시작한 ‘공공의료’의 세계적 원형이 바로 존애원이라 할 수 있다. 이토록 중요한 역사문화유산을 지역방송이 재조명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을 소개해 달라
“함께 이야기를 발굴하고 만들어 온 중요한 분이 바로 김순희 작가다. 라디오드라마를 제작해 본 적 없는 연출자였지만, 드라마 경험 많은 유명 작가보다는 ‘지역의 이야기’를 잘 아는 작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 출신이고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알며, 지역의 이야기를 찾아서 콘텐츠로 만들어 내고자 애쓰고 있는 김 작가는 이번 라디오드라마의 1등 공신이다.
제가 라디오드라마라는 콘텐츠를 연출하기 시작한 것이 2019년이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만들었던 ‘임청각’이라는 작품부터였는데, 이번 ‘존애원 낙강에 뜬 달’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분들이 바로 그때부터 함께 해온 성우들이다. 물론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12명의 베테랑 성우들이 한 식구처럼 드라마를 살려주고 있다. 10여 년부터 25년까지 경력의 다양한 캐릭터의 연기를 선보여온 베테랑 성우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번 드라마에서 1인 3~4역을 소화해 내면서 천상 연기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슬픈 장면에서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싸움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효과음 없이 성우들의 호흡만으로도 실제 치열한 칼싸움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감정이 복받쳐 한 신이 끝나면 한참을 쉬었다 다시 녹음을 이어가야 할 정도로 연기에 진심인 분들이다.
한 분만 더 소개하자. 우리 드라마의 보물 같은 존재이다. 그냥 보면 ‘저렇게 젊은 사람이 음악감독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최혜인 감독은 영화 ‘신과 함께’, ‘군함도’, ‘박열’ 등 영화음악과 드라마 OST,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이다. 보통 라디오드라마에서는 장면전환 음악 주로 사용하는데 최 감독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BGM과 등장인물별 테마음악까지 극적인 긴장감을 높일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음악을 녹여주고 있는 분이다. 이런 출연진들과 제작진들이 모여 ‘존애원 낙강에 뜬 달’이 완성되었다.”
상복이 많다
“고마운 일이다. 사실 방송PD가 되고 나서 라디오 프로그램은 딱 6개월 경력이 전부였다. 그것도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연출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온 라디오드라마라는 장르가 이렇게 재미있는 작업인지 미처 몰랐다. 운이 좋게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별기획 ‘임청각’과 한국전쟁 70주년 특별기획 ‘낙동강 전선’으로 방송대상 작품상을 받았고, ‘임청각’은 방통위 방송대상, 방문진 지역프로그램 대상,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까지 정말 복에 겨운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번 ‘존애원 낙강에 뜬 달’로 세 번째 방송대상 작품상을 받게 됐다. 가문의 영광이다.”
라디오드라마라서 지상파로만 유통되는가?
“그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유튜브나 오디오 플랫폼 등을 통해 콘텐츠를 유통시키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찾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한국전파진흥원에서 하는 해외 한국어방송 유통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해외의 한인 라디오방송사에서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희망 사항 중 하나인데 오디오드라마에 웹툰을 접목시켜 오디오웹툰을 제작해 유통시켜 보고픈 생각도 가지고 있다. 물론 제작비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느냐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유독 지역에 천착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역방송 피디다. 초창기에는 나 역시 서울로, 중앙으로 가고 싶어 했다. 지역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5년 겪었던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 경험을 계기로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지역’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프로그램을 만들수록 지역 공영방송에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방송장이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지역에는 수많은 지역방송인이 같은 고민을 하며 일하고 있다. 수도권집중이 망국의 원인이 되어가는 현시점에서 균형 발전과 자치분권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역 어디서든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나라, 교육, 주거, 의료 그 어떤 분야에서도 불균형 없이 인간존중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꽉 막힌 길에서 하루 서너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 서울로만 몰려드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도 조선 최초의 영남만인소(1792년)를 소재로 라디오드라마를 제작 중이다. 이제 막 성우 녹음을 끝낸 상태인데, 안동MBC 방송권역에는 9개의 기초단체가 있다. 당연히 각 지역마다 매우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 쌓여있다. 전통문화의 보고가 바로 우리 지역이다. 그동안 안동의 독립운동, 한국전쟁 초기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전투, 여중군자 장계향, 존애원, 만인소까지 우리 지역 곳곳의 이야기를 소재로 라디오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남아 있는 지역의 이야기 소재를 발굴해 라디오드라마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면 지역방송사가 만들어 놓은 라디오드라마가 10편 정도 되지 않을까? 꿈이 좀 크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포츠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종합] 토니안 “거울 깨고 피 흥건···조울증+대인기피증 앓아” (새롭게 하소서)
- ‘음주 튀바로티’ 김호중, 징역살이 억울했나···즉각 ‘빛항소’
- ‘마약투약·운반 의혹’ 김나정, 경찰에 고발당했다
- ‘송재림 사생활’ 유포한 일본인 사생팬에 비판세례···계정삭제하고 잠적
- [스경X이슈] “잔인하게 폭행” VS “허위 고소” 김병만, 전처와의 폭행 논란…이혼 후 재발한
- 한지민♥최정훈, 단풍 데이트 ‘딱’ 걸렸네…이제 대놓고 럽스타?
- 빈지노♥미초바 득남, 옥택연·로꼬·김나영 등 축하 물결
- [스경X이슈] 김광수가 되살린 불씨, 티아라·언니 효영에도 붙었다
- 최동석 ‘성폭행 혐의’ 불입건 종결···박지윤 “필요할 경우 직접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