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 ㅣ 예상과 다른 BTS 솔로의 마지막 퍼즐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11년 가을. 대구에서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온 뷔가 택시 바가지요금을 내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있던 사람은 제이홉과 RM, 슈가였다. '저 셋은 음악 좋아하고 힙합 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한 뷔는 저들이 자신과는 인연이 없을 사람들이리라 생각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중학교 1학년 때 잠깐 색소폰을 배우고 학원에서 TV 음악방송용 춤을 배운 지도 고작 6개월 밖에 안 된 뷔에 비해 저 세 사람은 각자 음악 작업실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뷔가 정국과 같이 본격적으로 춤과 노래 레슨을 받기 시작한 건 숙소에 합류한 뒤부터였다. 제이홉과 RM, 슈가에겐 이미 프로 냄새가 났지만 그때만 해도 뷔는 연습생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뷔는 그럼에도 꿈을 향해 큰 발을 내디딘 자신의 처지에 만족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12년은 숨 가쁘게 흘러갔다. 뷔가 속한 BTS는 아미라는 무시무시한 팬덤의 지지로 세계를 정복하고 멤버들의 군입대와 솔로 앨범 발매를 차례로 치렀다. 물론 멤버 전원의 입대는 아직 멀었지만 솔로 앨범(또는 싱글)은 한 명만 더 내면 마감이었다. 그 마지막 주자가 뷔다. 데뷔 때부터 '비밀 병기'로서 존재를 감춰야 했던 그는 솔로 앨범에선 비슷한 모양새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다. 뷔의 솔로작 제목은 'Layover'. 환승, 경유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잠시 쉬거나 잠깐 멈춘다는 것으로 이는 지금의 BTS가 당면한 상황이기도 하다. 뷔는 그걸 "최종 목적지 이전 자신을 굳건히 다지는 의미"로 썼다고 밝혔다.
뷔는 아티스트로서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좋아하고 영화 '러브레터'와 '어바웃타임' 같은 작품들에선 창작의 영감을 얻는다. BTS '화양연화' 시리즈 땐 배우 콜린 퍼스를 롤모델로 삼았으며 회화에선 고흐를, 사진가로선 안테 바드짐을 흠모한다. 음악도 재즈부터 알앤비/솔, 힙합, 팝록, EDM을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라 샘 쿡과 콜드플레이, 드레이크와 엘비스 프레슬리가 뷔에겐 모두 같은 영웅들이다. 그의 취향을 강타한 목록에는 에프엑스의 'Pink Tape'도 들어있다. 뷔는 이 앨범을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급기야 해당 앨범을 총지휘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맡기게 된다. 민희진. 세상이 '뉴진스의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이다.
러브콜을 받은 민희진은 일단 뷔의 정체성을 살폈다. 결론은 먼 데 있지 않았다. 느림과 저음. 뷔가 가진 저 결정적인 특징은 NME가 "2023년이 아닌 1923년 같다"라고 말한 로파이 재즈 피아노 루프로 비 오는 날의 그리움을 적시는 첫 곡 'Rainy Days'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스모키한 소리 질감과 분위기, 지치고 나른한 목소리가 편안함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뷔의 고유성은 작품에 단단히 뿌리내려 이후 네 트랙을 예고하는 깃발로서 펄럭이는 것이다. 그렇다. 'Layover'는 느리고 낮다. 두 번째 곡 제목을 빌려와 보면 이 작품은 또한 우울('Blue')하기도 하다. 그 중심에 올드스쿨과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축으로 섰고 다른 한쪽에선 재즈와 솔이 허락됐다. BTS 멤버들의 솔로 앨범들 중 "처음으로 제대로 된 비탄을 담은 앨범"이라는 해외 비평가의 말대로 그 안엔 사랑과 이별, 고독의 정서가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솔로 앨범이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물리적인 창작과 제작 일은 타인들에게 맡긴 채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노래와 춤, 이미지만 소화한 앨범, 아니면 본인이 음악 등 디테일까지 챙기고 관여하며 결과물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앨범. 프리스타일을 선택한 'Slow Dancing'의 안무나 같은 곡의 긴 플루트 솔로 같은 데서 나는 뷔의 앨범이 후자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크레디트를 보니 뷔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쳇 베이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트럼펫을 배우기도 한 적극성이, '풍경'과 'Blue & Grey' 등에서 증명한 자작곡 실력이 정작 그런 태도와 실력을 더 발휘해야 할 자신의 앨범에선 휘발되어버린 이 상황이 나는 조금 의아했다. 적어도 겉으로만 봤을 땐 뷔의 앨범에서 뷔의 존재감은 재킷 전면을 가득 채운 연탄이의 픽셀 이미지보다 미미해 보였다. 그는 왜 그랬을까.
12년 전 뷔가 처음 만난 "음악 좋아하고 힙합 하던" BTS의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솔로 앨범을 진정한 의미에서 솔로 앨범으로 남기고 각자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자기 작품의 창작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얹지 못한 건 정국이 유일했지만 그나마 정국의 'Seven'은 싱글이었기에 다음을 기대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 면에선 같은 싱글이었음에도 작사, 작곡자 명단에 본인을 올린 진의 'The Astronaut'는 따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오랜 예고 끝에 겨우 EP를 내놓은 뷔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아꼈다. 할 줄 아는데 하지 않은 그의 이번 소극성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차라리 앞 노래의 피아노 버전으로 채운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서 자신의 장기인 색소폰이라도 한 번 불었다면 좋았을 법했다. 혹 뷔가 부른 민희진의 그늘이 되레 뷔의 가능성을 가려버린 건 아닌지(크레디트만 보면 바나(BANA)가 제작한 XXX의 앨범이라 해도 믿길 정도다). 복고를 복기한 'Love Me Again'의 뮤직비디오가 과하고 어색하게 느껴진 건 단순히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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