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품질도 철학이다!
조선 시대 과거에 급제하려면 글짓기 실력 즉, 문재(文才)만 있다고 다되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관과 세상을 보는 철학도 있어야 했다. “인재를 등용하고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라”, “왜구가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 “나이를 먹으면 서글픈 생각이 드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이런 것들이 왕이 직접 낸 과거의 마지막 문제였다. 문재, 역사인식 그리고 철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 소위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인재를 뽑으려는 것이 과거의 목적이었다.
작금, 대학에서 ‘문사철’은 존폐의 위기이다. 졸업생의 취업율과 연구비 수주 실적이 떨어지는 것이 위기의 원인이다. 특히 철학은 대학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다. 철학(Philosophy)은 그리스어 ‘좋아한다’라는 ‘필로’와, ‘지혜’라는 ‘소피아’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지혜란 사물의 본질과 가치, 인식과 논리, 이성과 윤리 등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는 기본 또는 가치관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철학의 대상은 모든 자연현상과 인간이었으니, 근세까지도 수학과 물리학은 철학의 일부였다. 그런 철학이 요즘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로 홀대 받는 것이다. ‘문사철’은 철학에 대한 경시가 기저에 깔린 말이다. 그나마 “그 사람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어” 라고 말할 때, ‘철학’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침대가 과학’이라면 경영은 철학이다. 과학적 분석의 결과가 침대이듯이, 경영자의 철학을 반영한 결과가 경영성과이다. 경영에 철학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는 인재경영, 현장경영, 기술경영, 품질경영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품질에 최고의 가치와 철학을 두는 ‘품질경영’이 글로벌 기업의 사활을 좌우한다. 미국의 CEO 98%는 “현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품질”이라고 인정한다.
품질(Quality)이란 “재화나 서비스가 고객의 요구나 기대치와 비교될 때의 과부족 상태”이다. 고객의 요구나 기대치를 충족시키거나 그보다 높은 경우에 보통 “품질이 좋다” 라고 하며, 그에 못 미치는 경우 “품질이 나쁘다” 라고 평한다. 조셉 주란(Joseph Juran;1904~2008) 뉴욕대 교수는 많은 품질관리 프로그램을 창시하여 ‘품질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는다. 그에 따르면 고객이란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자나 사용자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영향 받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고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요구와 기대치를 가진다. 따라서 품질은 시대와 고객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 주란은 “21세기는 품질의 시대”라 말했다. 피터 드러커가 설파한대로 “고객은 기업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고객을 만족시키는 품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인류 최고의 걸작은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지어졌기에 5,000년 넘게 건재한다. 품질의 기초는 표준화이다. 진시황의 무덤에서 출토된 8,000여 점의 테라코타 병사와 말은 각각 그 표정이 다르지만, 공통된 품질관리 표준에 의해 제작되어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세 유럽의 수공업 길드(Craft Guild)에서 견습생(Apprentice), 숙련공(Journeymen) 그리고 장인(Master)의 단계는 결국 표준화된 품질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완벽 품질을 지향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은 “에도(江戶)의 부엌에서 나왔다”라는 말이 있다. 영주나 사무라이의 밥에 돌이나 불순물이 들어가면 바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표준화와 무결점의 최고 품질 걸작은 우리에게 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여 개의 경판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를 잘라 2년간 말린 후 다시 소금물에 3년간 절이고 삶아서 만들었다. 거기에 5,230만자의 글자를 엄격한 품질표준에 따라 구양순(歐陽詢) 체로 통일해서 새긴 것이다.
한편 품질 미달 제품은 대재앙을 가져왔다. 1912년 처녀 항해 5일 만에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당대 최고의 여객선 타이타닉(Titanic) 호가 그것이다. 그 배의 잔해는 1985년, 해저 4,000미터에서 발견되었다. 2008년 4월 뉴욕 타임스(NYT)의 보도에 따르면, 타이타닉의 침몰 원인은 빙산과 충돌로 생긴 선체 철판의 구멍이 아니라, 철판과 철판을 잇는 이음 못인 리벳의 품질이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이 잔해에서 수거한 리벳을 분석하고, 강철 리벳보다 3배나 더 많은 슬래그를 포함했기에 강도 미달임을 밝혀냈다. 빙산과 충돌 시 리벳이 부러졌고, 그 결과 생긴 뱃머리 철판 사이의 틈에 바닷물이 들어와 침몰로 이어졌다는 조사결과이다. 이는 타이타닉 건조 당시 조선소의 회의록에서도 밝혀졌다. 타이타닉과 초대형 여객선 3척을 동시에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강철 리벳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 대책으로 하중을 많이 받는 선체 중앙부만 강도 높은 강철 리벳을 사용했고, 뱃머리 부분은 강도가 약한 리벳을 사용했다. 결국 원가 100원 남짓한 품질 미달 리벳의 사용과 그것을 눈감아 준 조선소 경영진의 철학 부재가 거대한 타이타닉을 침몰 시키고 1,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사소한 문제 하나를 방치했을 때 그것이 그 주변에 엄청난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이 있다. 1982년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윌슨(James Wilson)과 켈링(George Kelling)이 공동발표한 ‘깨진 유리창의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그 지역이 바로 슬럼화되어 우범지역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범죄학 뿐만 아니라 품질경영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품질관리에서 깨진 유리창은 하나의 작은 불량이지만, 그 파급 효과를 수식으로 표현한다면 ‘100 - 1= 0’이다. 타이타닉 호 건조에 사용된 불량 리벳은 ‘방치된 깨진 유리창’이었다.
깨진 유리창처럼 부정적으로 확산되어 결국에는 기업에게 큰 재정적 부담을 주는 것이 ‘품질비용(Quality Cost)’이다. 주란 교수는 “처음부터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은 제품(서비스)을 만들었기 때문에 발생되는 비용”이라 정의하였다. 초기에 제품이나 서비스의 불량을 예방하는 비용이 1원이 든다고 가정했을 때, 전체를 검사하고 불량품을 찾아내어 시정하는 데에는 그 열 배인 10원의 품질비용이 소요된다. 불량을 찾아내지 못하여 시장에 유통된 경우에는 그 시정 조치에 다시 열 배인 100원이 소요된다는 것이 품질비용의 일반적 패턴이다.
불량품이 유통되었을 때 품질비용이 100배로 들어가는 이유는 미국 와튼 스쿨의 2006년 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불만족 고객의 6%만이 직접 기업에 항의하고, 31%는 친구,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안 좋게 내며, 나머지 63%는 침묵한다고 한다. 나쁘게 소문내는 31%는 평균 22명에게 자신의 불쾌한 경험을 입소문 낸다는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한 사람은 겨우 6명에게 입소문을 낸다.
“가격은 잊지만 품질은 기억한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경영자에게 품질은 자신의 철학이다. 품질관리 방법으로 유명한 PDCA Cycle이 있다. 즉 ‘Plan-Do-Check-Act’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고 주창한 뉴욕대 데밍(Edwards Deming)교수는 품질에 관한한 경영자는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철학은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조그만 불량과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것이어야 한다. 깨진 유리창은 절대 방치해서는 안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연인 살해 후 안마방서 잡힌 현직 해경…“평소 성관계에 집착” - 매일경제
- 7살 어린이가 생일날 공원서...2.95캐럿 다이아몬드 주운 사연 - 매일경제
- 올해는 거실, 4년뒤엔 부엌…적금처럼 사는 ‘반값 아파트’ 나온다 - 매일경제
- “부자들만 사냐, 나도 산다”…개미가 올해에만 9조원 산 ‘이것’ - 매일경제
- 생후 6개월 아기의 눈이...코로나 치료제 먹은 후 파랗게 변했다 - 매일경제
- 셀카 올렸더니 웬 낯선 사람이…“어머, 이거 진짜 나 맞아?” - 매일경제
- 우크라 “한국이 1순위”…긴급요청해 받아간 ‘이것’ 뭐길래 - 매일경제
- 남자 망치는 ‘몹쓸병·몹쓸車’ 욕하지만…못사면 죽을맛, 美친 케미 [최기성의 허브車] - 매일
- “역시 호날두”…모로코 초호화 호텔, 지진 피난처로 개방했다 - 매일경제
- 류현진, 13일(한국시간) 슈어저와 맞대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