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예술가 일깨운 산불의 위력… 끔찍한 화재 본 후 작품 구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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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현재 씨네필(영화광) 사이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다.
―산불 전엔 '보이지 않고 들리던' 영화는 그 뒤엔 '들리지 않고 보인다'.
"에릭 로메르 감독은 '카메라의 위치는 도덕적 위치다'라고 했다. 이 영화는 오만하고 겁 많은 사람의 자화상이자 그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드러낸다. 레온의 시선과 레온을 보는 것 두 가지가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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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3부작’ 중 두번째 작품
“주인공 ‘레온’에 내 모습 투영
불이난 숲에선 소리가 멈췄다”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현재 씨네필(영화광) 사이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감각적이면서 윤리적이고, 문학적이면서 영화적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신작 ‘어파이어’(13일 개봉)는 사랑의 감정과 창작의 고통이 맞물린 강렬한 여름을 ‘불’을 소재로 이야기한다. ‘물’의 속성을 비극적 사랑에 겹쳐낸 ‘운디네’에 이은 ‘원소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한국을 방문한 페촐트 감독을 지난 6일 그가 투숙한 숙소 옥상에서 만났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며 거리의 소음이 들리는 야외에서 담배 연기를 연거푸 내뱉는 감독의 모습은 환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그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소설을 마무리하기 위해 친구와 휴양지에 온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나디아(파울라 베어)를 만나 서투른 사랑의 감정과 꽉 막힌 아집 사이에 표류한다. 레온은 “일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소설 집필에 매달리지만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나디아를 훔쳐 보기 바쁜 자기 세계에 갇힌 속물이다. 그런 그가 산불이란 거대한 사건을 맞으면서 비로소 자기가 속한 세계와 사랑하는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불이란 소재를 택한 이유는.
“가족과 간 터키 여행에서 산불이 난 지역을 봤다. 거대한 산이 다 타버렸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간이 지구에 끔찍한 짓을 하는 결과 중 하나가 산불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친구들이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이야기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아름다운 여름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하겠다는 걱정에서 시작했다.”
―소설가 레온은 오만하고 젠체한다. 예술가란 점에서 본인의 모습이 담겼는지 궁금하다.
“나의 오만한 모습이 레온에 들어가 있다. 레온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산불 전엔 ‘보이지 않고 들리던’ 영화는 그 뒤엔 ‘들리지 않고 보인다’. 레온의 시선을 활용한 연출이 흥미롭다. 화재를 겪고 보이지 않던 대상과 사물들이 비로소 보인다.
“에릭 로메르 감독은 ‘카메라의 위치는 도덕적 위치다’라고 했다. 이 영화는 오만하고 겁 많은 사람의 자화상이자 그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드러낸다. 레온의 시선과 레온을 보는 것 두 가지가 함께 담겨 있다.”
―시각적 이미지와 반대로 산불 전후로 벌레 소리 등 주변 소리는 들리다가 들리지 않는다.
“산불이 난 후 우리는 숲에서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숲은 굉장히 좋은 음악을 품고 있다. 숲이 가진 풍부한 소리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불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마지막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영화 전체가 하나의 소설이 된 것 같았다.
“화자의 목소리가 영화에 들어가면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은 현재지만 동시에 과거가 된다. 이곳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기억으로 전환되는데 이런 흥미로운 순간이 영화적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통상 여름 영화들엔 현재 가을에 있는 우리가 과거의 여름을 기억하는 멜랑콜리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영화가 어려울 수 있는데 관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준다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좋아하는데 배경 중 한 곳이 비무장지대(DMZ)인지 전혀 몰랐다. 그럼에도 한국에 분열이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영화는 추측의 공간, 꿈의 공간이다. 설명하지 않을수록 영화를 더 멋지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영화의 멋진 점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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