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중심의 과감한 기술 투자… ‘0억달러 시장’ 판 키우는 미다스 황[Leadership]
3D 게임시장·AI 등 열풍 타고
30년만에 세계 최고 기업 반열
시총 1위 애플 추월까지 넘봐
“30일 안에 폐업 당할 수 있다”
스스로 연봉 ‘1달러’로 낮추고
삭감한 돈으로 R&D인력 채워
매출 33%는 기술 개발에 투입
미, 최근 대중 첨단기술 규제에
인도 등 새로운 시장 적극 공략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공지능(AI) 챗GPT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는 단연 엔비디아가 꼽힌다. 창립된 지 30년밖에 안 된 이 기업을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로 끌어올린 젠슨 황 CEO가 혁신의 새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공식 행사 때면 어김없이 검은색 라이더 가죽 재킷을 입고 등장해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수했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도 종종 비교된다. 두 사람 모두 기술 혁신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유명한데 젠슨 황 CEO는 왼쪽 팔에 ‘엔비디아’로고까지 문신으로 새겨 넣어 남다른 애착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중심이 된 엔비디아는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이 1조 달러(약 1332조 원)를 넘어선 데 이어 애플의 세계 1위 시총 기업 타이틀까지 넘보고 있다.
◇팔로어(추종자) 아닌 프런티어(개척자)= 황 CEO의 선구안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1990년대 초 인텔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전부 중앙처리장치(CPU)에 집중하고 있던 시절, CPU가 아닌 그래픽 가속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평소 컴퓨터 게임을 즐기던 그는 “앞으로 게임 그래픽 수준이 높아지면 그래픽과 영상만 빠르게 처리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며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그래픽카드’ 회사로 시작한 엔비디아의 첫 제품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2년 후 내놓은 두 번째 그래픽 칩인 ‘NV3’는 3차원(3D)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래픽처리장치(GPU)란 용어 자체를 처음 쓴 주인공도 바로 그다. 엔비디아는 1999년 ‘지포스 256’을 출시하면서 처음으로 GPU란 용어를 붙였다. 황 CEO는 GPU가 게임용에 머물지 않고 미래 메타버스,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칩을 연이어 출시했다. GPU는 CPU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3D 그래픽을 처리하는 반도체인데 명령어를 하나씩 순서대로 처리하는 CPU와 달리, 데이터를 동시에 다뤄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는 이제 GPU를 넘어 CPU 시장도 넘보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는 영국 브리스틀 대학과 협력해 인텔과 AMD에 대항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이삼바드 3(Isambard 3)를 구축하며 한 단계 진일보한 기술을 선보였다. 인텔과 AMD가 수십 년간 양분했던 CPU 시장에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다.
◇기술 리더십… 직원 75%를 연구·개발(R&D) 인력으로 채워 = 황 CEO는 “우리는 언제라도 30일 안에 폐업당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기술 혁신은 우수한 인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엔비디아 전체 직원 2만6000여 명 중 75%에 해당하는 2만여 명이 R&D 인력이라는 점만 봐도 그가 인재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 위기에 처했을 당시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해 아낀 돈으로 인재를 영입해 기술력 향상의 기회로 삼은 이야기도 유명하다. 또 황 CEO는 매출의 33%를 R&D에 투입하는 등 기술력으로 AI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황 CEO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가 0억 달러 시장($0 billion markets)이다. 막대한 잠재력이 있지만 개발되지 않아 당장 수요가 없는, 그래서 유망한 시장을 의미한다. 초창기 개인용컴퓨터(PC) 게임 시장은 물론 AI 컴퓨팅까지 엔비디아가 몸담았던 시장은 대부분 0억 달러 시장이었다.
그는 지난 5월 국립대만대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먹잇감을 찾아 뛰는 동시에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가 펼쳐지는 시기에 끊임없이 달려나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내가 PC와 칩 혁명에 참여했던 것처럼, AI 혁명에 참여해 기회를 잡으라”라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 엔비디아 최대 리스크… 새로운 시장 개척 나서 = 요즘 제일 잘나가는 황 CEO에게도 고민거리가 생겼다. 첨단기술을 두고 미국과 중국 간 견제가 심화하면서 글로벌 사업 확장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황 CEO는 5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분야 대중(對中) 수출 규제와 투자 제한 등에 대해 “오히려 미국 기업의 손을 등 뒤에서 묶는 격”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미국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를 팔지 않으면, 미국 빅테크 기업은 대체 불가능한 거대 시장(중국)을 잃고 엄청난 피해를 입겠지만 중국은 결국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들어 기술 자립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황 CEO는 말로만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정부 방침 때문에 엔비디아의 고사양 칩(A100)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이를 대체할 저사양 모델(A800)을 개발해 중국에 팔았다. 4일(현지시간)에는 인도로 날아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회동했다. 업계에선 두 사람의 이번 회동이 양질의 IT 인재를 보유한 인도와 AI 반도체 분야 선도기업 엔비디아 사이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2004년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해 4개의 엔지니어링 개발센터를 두고 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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