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오해의 진실…"'귀한 몸' 지방 인재 모셔갑니다"
[편집자주]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된다. '지역 소멸'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그런데 비수도권에 생명수와 같은 일자리들이 창출되기 시작했다. 배터리 밸류체인을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를 둘러싼 오해가 있다. 반도체를 잇는 국가 핵심 산업임에도 국내 투자·고용에는 소홀하단 지적이다. 작고 가벼워 비행기로 수출하는 반도체와 달리 크고 무거운 배터리는 물류비 부담이 커 고객사 인근에 거점을 마련한다. 대규모 북미·유럽 투자가 이뤄진 이유다.
그렇다고 국내 투자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수도권 집약적인 반도체와 달리 충청·경상·전라권을 중심으로 설비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일자리도 당연히 이 배터리 밸류체인을 따라 형성될 수밖에 없다.
중심은 당연히 배터리 3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청주, 삼성SDI는 충남 천안과 울산광역시, SK온은 충남 서산에 각각 거점 생산시설을 마련했다. 3사 셀공장은 북미·유럽·중국 등지에 설치되는 해외 신설 공장의 모델이 된다. 이른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다. 제품개발·제조의 중심이 되는 공장이다. 생산 자동·효율화 작업을 거쳐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면 이를 본따 해외에 설치하는 방식이다.
해외공장이 단순 노동자 중심이라면, 국내 공장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 설비기 때문에 고숙련 작업자가 주를 이룬다. 현대차그룹이나 일본 현지 배터리 수요가 높아지면서 이들 공장의 셀 수요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중장기적인 추가 투자가 예상된다.
셀 생산을 위해선 안정적인 소재 공급이 필수적이다. 배터리 4대 핵심소재로 불리는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배터리산업 태동기에는 일본, 이후에는 값이 저렴한 중국 소재사에 주로 의존했다. 최근에는 국내 배터리셀 생산 증대에 발맞춰 대규모 소재 투자도 단행한다. 중국 의존을 낮출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크게 는다. 이 역시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LG화학은 청주에 양극재·분리막 공장을 운영하면서 신규 투자는 경상·전라권에 집중시켰다. 구미에 양극재 공장 설립을 예고했으며, 고려아연 자회사 켐코와 설립한 양극재 합작공장(JV)은 울산에 마련한다. 화유코발트와 설립한 전구체 생산 JV는 공장 부지로 새만금을 낙점했다. 국내에서는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에 주로 납품한다.
포스코퓨처엠은 광양·구미·포항에서 양극재를, 포항·세종에서 음극재를 생산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역시 최대 고객이다. 현재 광양에는 삼성SDI 공급용 양극재 공장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광양을 이차전지 밸류체인의 메카로 키우겠단 구상을 하고 있다. 포스코필바바라리튬솔루션·포스코HY클린메탈 등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청주에서 양극재를 생산해 삼성SDI·SK온 등에 공급해온 에코프로는 포항을 신규 투자의 거점으로 삼았다. 영일만산업단지에 양극재(에코프로비엠), 양극재 핵심원료인 전구체(에코프로머티리얼즈)와 수산화리튬(에코프이노베이션) 공장을 세웠다. 같은 포항에 위치한 블루밸리산업단지에도 이와 똑같은 에코프로 캠퍼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삼성SDI와는 양극재 JV 에코프로이엠을 포항에서 운영 중이며, SK온·GEM과 함께 새만금에 전구체 합작공장도 설립할 계획이다.
배터리 3사 모두에 분리막·동박을 공급하는 SK아이이티테크놀로지와 SK넥실리스 공장은 각각 충북(증평·청주)과 전북(정읍)에 소재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북 익산에서 동박과 양극재 소재(LMO) 공장을 운영 중이다.
배터리 업계는 지방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학비 지원과 취업 보장 조건을 내걸며 '계약학과'를 운영한다. 최근 들어선 수도권에서 지방 배터리 업체로 이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에 계약학과를 설립했다. 학위 취득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되는 형식이다. 아직 졸업생은 없지만, 현재 50여명의 재학생은 졸업 후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공장, 대전기술연구원 등 지방사업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사업장과 가까운 충북대, 충남대와 같은 충청권 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한 채용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6개 대학과 협약을 맺고 울산 사업장에 배터리 인재를 모셔간다. 2022학년부터 10년간 학사 200명, 석·박사 300명의 장학생을 선발하고, 삼성SDI 입사를 보장한다. 충남 서산에 사업장을 둔 SK온은 충남대, 충북대를 비롯해 거점 국립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채용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UNIST 등에 계약학과를 설립하고 장학금 등 특급 혜택을 주며 인재 양성에도 나섰다. 졸업 후 SK온 취업에 특전을 준다.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지방 인재를 향한 러브콜도 뜨겁다. 경북 포항 및 전남 광양에 생산라인이 있는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2021년 여수석유화학고와 산학협력을 체결한 데 이어 포항 한동대에도 배터리소재학과를 만들기로 했다. 올해는 포항공대(포스텍), 포항제철공고와 산학협력을 맺고 지방 인재 육성에 나섰다.
경북 포항 및 전남 광양에 생산라인이 있는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2021년 여수석유화학고와 산학협력을 체결한 데 이어 포항 한동대에도 배터리소재학과를 만들기로 했다. 올해는 포항공대(포스텍), 포항제철공고와 산학협력을 맺고 지방 인재 육성에 나섰다.
서산에 사업장을 둔 LG화학은 7개 대학과 산학협력을 진행하며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충남 천안의 한국기술교육대학교와 산학 협력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차전지 관련 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비수도권에 있기 때문에 '인재 확보'가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며 "선제적 조치를 통해 지역의 인재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사업장 관내에 위치한 학교와 협력해 우수 인재의 지역 채용뿐 아니라 정착을 유도해 일자리 선순환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수도권 직장인들이 배터리 업체를 찾아 '낙향'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성장성을 고려해 이직과 함께 지방으로 이주하는 식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이 좋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높아져 만족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업계이기 때문에 급여 수준도 수도권 여타 업계와 비교했을 때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 5월 10여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충청도의 배터리 소재사로 이직한 30대 후반 A씨는 "1년 전부터 이직을 준비했는데, 이차전지 업계 전망이 좋아 유심히 지켜보다 대규모 채용을 한다고 해서 이직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1시간여 통근해야 했던 서울 생활을 끝내고 지방에 오니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 가족 분위기가 훨씬 화목해졌다"고 설명했다.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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