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27위 하림의 작은 동물병원 하림애니멀클리닉...증여 일주일 만에 해산 ‘눈길’
해산 일주일 전 하림으로부터 증여
해산 기업에 증여는 흔치 않아 눈길
사적 이익 묘수있나 세무사들 사례연구까지
하림 “증여 후 해산은 10년 전 수의법 개정 때문”
재계 27위 하림에게는 아주 작은 동물병원이 있습니다. 바로 전라북도 익산 마동 하림본사 1층의 하림애니멀클리닉입니다. 총 자산 7억원,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억2600만원으로 하림의 비상장 계열사 중에서도 그 규모가 아주 작은 회사입니다.
보통은 이 정도 규모의 자회사에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하림애니멀클리닉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애초에 김홍국 하림 회장의 장남인 김준영씨(NS쇼핑 사내이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육류 가공업체 올품에서 하림의 품으로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2018년 1월 하림은 올품으로부터 하림애니멀클리닉 지분 100%를 5507만원에 인수했습니다. 당시만해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림그룹이 올품에 대한 부당한 지원, 일감 몰아주기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2017년까지 하림애니멀클리닉 매출의 대부분은 하림그룹 계열사인 하림썸벧, 올품 등과 맺은 수의자문 계약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더 세간의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하림이 애니멀클리닉을 근간으로 신사업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하림이 애니멀클리닉을 인수하고 넉달 뒤에 유상증자를 진행해 자본금을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렸고 사업목적도 기존 동물병원업, 생명공학연구, 동물약품 도·소매업 등에서 애완동물 장묘 및 보호 서비스업, 사료 도매업 등을 추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하림애니멀클리닉은 하림의 품에 안긴 지 5년 만에 해산 절차를 밟기로 했습니다. 지난 5일 하림애니멀클리닉은 상법 제517조 제2호에 따른 주주총회 결의로 해산을 결정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주총 결의일은 지난달 31일이었습니다.
해산만 밝혔다면 눈길을 끌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해산 결정이 나기 불과 일주일 전인 24일 2억3000만원의 현금과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을 증여했습니다. 통상 해산하기 전 증여는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 컨설팅을 주로 하는 세무업계에서는 하림이 무슨 계산으로 이런 움직임을 보인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하림에서 자회사에 자산을 증여하고 해산하는 과정에서 법의 테두리는 지키되 오너일가의 사적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지 이런 저런 방식의 고민을 해봤다는 뜻입니다. 하림은 아직 기업승계가 마무리 되지 않은 곳이고 승계를 위해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것으로 보여 더 그랬다는 게 세무업계의 전언입니다.
한 세무사는 “하림애니멀클리닉은 외감법에 따라 속속 공개되는 회사가 아니다보니 이런 저런 말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규모가 작아서 여러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적 이익이 크지 않아 더 이해가 안됐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림은 왜 작은 자회사 동물병원을 인수했다가 증여하고 해산한 걸까요. 하림은 2013년 7월 30일 영리법인 개설제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개정·공포된 것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수의사법 제17조에 따르면 동물병원은 수의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동물진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동물진료법인), 수의학을 전공하는 대학(수의학과가 설치된 대학을 포함),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만 개설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려 동물시장이 커지면서 큰 자본을 등에 업은 영리법인 형태의 동물병원이 확장하는 것에 수의사들이 위기감을 느껴 만들어진 법입니다.
법 통과 이전에 만들어진 영리법인 동물 유예기간은 10년이 주어졌고 그 사이 유명 동물병원이었던 이리온 동물병원은 폐업, 해마루 동물병원은 재단법인 형태로 전환했습니다. 하림애니멀클리닉도 이 때문에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림 관계자는 “10년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더 이상 하림 법인 안에 속해있을 수 없어서 비영리법인으로 바꾸려고 해산한 것”이라면서 “사업 자체가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증여 결정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림은 인수합병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지분 승계 등 현안이 많았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관심사가 되고 그 의도에 대해서도 사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금을 넣다가 사업이 마무리 되어 날개를 달 즈음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양재동 물류센터부지 개발이익은 하림지주 몫으로 돌아가게 됐던 전력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높은 상속·증여세를 감안했을 때 이런 지배구조 개편을 한 번이라도 안한 기업이 있는지 되짚어보면 사실 하림이 유별난 회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림의 움직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다는 건, 앞으로 기업 이미지 개선에 힘 쓸 일도 많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하림이 시가총액 8조원, 자산 규모 26조원에 이르는 HMM의 새 주인이 된다면 하림의 기업 이미지를 개선할 여력이 좀 더 많아질까요. 재계 27위의 하림의 행보가 앞으로 기대되는 동시에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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