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박배낭·마음 내려놓으니 울릉도가 더 예뻐 보였다

민미정 2023. 9. 1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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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야영장은 탁 트인 오션뷰와 함께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울릉도의 인기 야영장이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나느라 하늘길이 분주하다. 우리도 오랜만에 함께 떠나자며 경석이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은 각자 생활이 바빠 함께 떠나는 횟수가 적어졌지만, 경석은 백패킹 초보시절 만나 함께 성장한 멤버 중 한 명이다. 오랜만에 힐링하러 떠나자는 것이다. 그는 울릉도로 가자고 했다. 시간이 맞는 멤버들을 모았다. 울릉도를 내집처럼 드나드는 오경석과 한동훈, 이정원과 울릉도는 처음인 김정미, 김성미와 나까지 6형제가 모였다(워낙 오래된 사이라 우리는 서로를 형제라고 부른다).

밤새 차를 달려 새벽녘 강릉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울릉도행 배는 너울성 파도에 출항이 하염없이 지연됐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울릉도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초조함 속에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출항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떠나는 울릉도로 향하며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마음이 '울릉울릉'댔다. 속도 '울렁울렁' 거렸다. 약사가 건네 준 멀미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음에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반 실신 상태로 도착한 저동항에 발을 내딛고도 한동안 지옥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쳤다.

도동항에서 저동항으로 이어지는 행남해안산책로는 화산 분출로 형성된 기암절벽으로 이뤄져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색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멤버 모두 '관광지 인증' 타입이 아니라서 첫날은 휴식했다. 울릉도에 온 궁극적인 목적은 물놀이와 깃대봉 백패킹이었다. 8년 전 겨울, 회사일로 취소했던 울릉도 백패킹이 못내 아쉬웠는데 드디어 다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첫날 야영지는 사동해수욕장으로 잡았다. 택시로 10여 분 달려 사동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사람이 얼마 없었다. 울렁울렁 시끄러운 속을 달래기 위해 재빨리 텐트를 쳤다. 의자를 펴고 해풍에 널어놓은 오징어 마냥 늘어졌다. 맑고 투명한 바닷속에서 다이빙하는 상상을 하면서 쉼 없이 달려왔건만 나는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잠시 후 바다 쪽에서 정원이가 소리쳤다.

"야, 여기 뿔소라 엄청 많아 들어와봐!"

철인3종 대회를 심심풀이로 나가는 정원이는 어느새 바다에 들어가 뿔소라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산책 중 바라 본 학포야영장. 바다와 인접해 있어 쉽게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물 속이 궁금해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의자와 물아일체가 되어버린 몸뚱아리는 마음 같지 않았다. 어차피 '금어기(어패류의 포획을 금지하는 기간)'라 많아도 소용없다며 손사래 쳤다.

다음날 본격적인 울릉도 탐방을 시작했다. 텐트 문을 열어보니, 동쪽 바다 끝에서 붉은 태양이 솟아 올랐다. 머리 위를 재빠르게 훑으며 흘러가는 구름이 붉게 물들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장관이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야영지를 철수했다. 많은 인원이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기 불편해 9인승 차를 렌트했다. 야영지를 매번 옮길 것도 없이 학포야영장을 베이스캠프로 삼기로 했다.

학포야영장은 시설이 좋고, 스노클링이 가능한 바닷가가 가까이 있어 백패커들에게 인기가 많다. 선착순이라 서두른 덕분에 한적한 자리를 맡았다. 단체로 움직일 때 캠핑장 자리는 한적한 구석 자리에 잡는 게 좋다. 그래야 여러 사람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다.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군락지. 9~10월이면 만개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무실로 갔다. 이상한 말소리가 들려 들어가보니, 앵무새가 말을 하고 있었다. 제법 커다란 앵무새는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했다. 관리자가 키우는 앵무새는 붙임성이 좋아 야영객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앵무새는 학포야영장의 마스코트였다. 배낭을 풀고 바로 바닷가로 내려갔다. 낚시가 취미인 동훈이는 낚싯대를 챙겨 바위 위를 건넜다.

"동훈아 강성돔 회 먹고 싶어. 제일 큰 놈으로 잡아와!"

"난 손맛으로 낚시 하는 거지,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매사에 시크한 동훈이가 외쳤다.

그는 낚은 물고기를 먹지 않고 그냥 놓아준다. 그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그를 발끈하게 만드는 게 재밌어서 딴지를 걸었다.

"너 못 잡을까 봐 미리 선수치는 거 아니지?"

"내가 잡아서 증거 사진 찍어온다!"

스노클링 중 문어를 발견한 오경석씨. 울릉도에서 비어업인의 수산동식물 포획 행위는 불법이라 그대로 놓아주었다.

낚시에 진심인 동훈이는 발끈했지만 그의 말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꼴뚜기 사진이라도 상관없어. 화이팅!"

흩어진 그의 말을 주워담으며 응원의 말을 던졌다.

결국 그날 그가 잡은 생물체 사진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 울릉도의 바다는 맑고 투명했다. 아침 햇살이 넘실대는 수면 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됐다. 그 사이 물개 정원이는 벌써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정미는 물이 무섭다며 입수를 포기했다. 경석이와 성미도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들어가는 바다인가. 이집트 다합에서 처음 프리다이빙을 배울 때였다. 물 공포증 때문에 공기통도 없이 잠수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는데, 물 속이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공포증마저 깡그리 잊은 채 블루홀을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쪽빛으로 빛나는 울릉도 바다는 블루홀 못지 않게 나를 유혹했다. 바다를 음미하는 사이 정원이가 또 소리쳤다.

학포야영장의 마스코트 앵무새가 야영객들을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뿔소라다!"

정원이는 뿔소라 헌터가 아닌가 싶었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뿔소라를 부지런히도 찾아냈다. 그러다 뿔소라로 점심식사 당번을 정하기로 했다. 남녀로 나눠 뿔소라를 적게 건진 팀이 식사 당번을 하는 것이다. 내기를 하지 않아도 뿔소라에 진심이었던 정원이는 전투력 '만렙'으로 잠수하러 들어가서는 도통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 저 정도는 돼야 철인 3종을 하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수긍했다. 잠시 후 정원이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양손에 뿔소라가 가득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관리인이 새벽에 배를 타고 직접 잡아 온 생선으로 회를 떠줬다.

깃대봉 정상 '야영금지'

셋째 날, 깃대봉으로 향했다. 울릉도에 처음 온 정미와 성미와 나만 가기로 했다. 숲길을 따라 피톤치드를 담뿍 흡수하며 걸었다. 천연기념물인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군락지가 나왔다. 꽃은 피어 있었지만, 향기가 거의 없었다. 초록색 초원 위에 피어난 하얀 꽃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힐링이었다. 평지가 이어졌다. 알봉 둘레길과 교차되는 숲길을 벗어나자 드넓은 메밀밭이 나왔다. 하늘에는 양떼 구름이 몰려다녔다. 서정적인 풍경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피크닉 테이블도 있었다.

깃대봉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 왼쪽 대풍감부터 송곳산까지의 파노라마다. 반대쪽으로 나리분지에서 성인봉까지 360도 뷰를 감상할 수 있다.

메밀밭을 지나 출렁다리를 지나자 오르막이 시작됐다. 완만했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하지만 등산로 전체가 그늘져 시원했다. 곧 계단이 나타났다. 경사가 급해졌다. 다행히 산행은 길지 않았다. 금세 정상데크에 올라섰다. 울릉도의 동서남북을 두루두루 조망할 수 있는 깃대봉 정상은 백패커에게 탐나는 야영지였다. 하지만 데크 난간에 빨간 글씨로 대문짝만 하게 써 있는 '야영금지' '취사금지' 팻말이 위협적이었다.

입도하던 날 비바람이 몰아치던 것 치고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미세먼지 없이 가시거리도 좋았다. 나리분지와 알봉, 성인봉까지 깨끗하게 보였다. 다음엔 좀 더 조촐한 멤버로 성인봉도 올라야겠다며 다짐하고는 하산을 서둘렀다. 올라올 때 그냥 지나쳤던 신령수를 맛보기로 했다. 투막집에서 신령수로 향했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족욕을 하며 발의 피로를 풀어줬다. 울릉도에서의 '메인 스케줄'을 마쳤다. 성인봉과 알봉, 봉이란 봉은 다 올라가고 싶었지만, 쉬러 온 멤버들에게 극기훈련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엔 본격적으로 백패킹 모드로 장착하고 오겠노라며 다짐했다.

산행을 마치고 경석이에게 연락했다. 세 남자는 나리상회 평상에 누워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동네 구경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마을 길은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배낭을 메고 뚜벅이로 울릉도를 여행하는 것도 꽤 재미있을 듯했다.

숲이 우거진 깃대봉 하산길에 빛이 새어들어왔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냈다.

나리상회 사장님은 백패킹이 좋아서, 울릉도의 매력에 빠져서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사장님은 지금도 시간이 되면 틈틈이 산으로, 해외로 백패킹을 떠나는 여장부다. 커피를 마시며 사장님과 여행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 나는 그것이 무척 신기하고 기뻤다. 허기를 느낀 우리는 사장님이 직접 담근 담금주를 하나씩 사 들고 나리상회에서 나왔다.

울릉도는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산행이 아니라 관광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함께 온 세 친구는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으로만 나를 안내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다.

마지막 날, 경석이는 도동항 행남해안산책로로 우리를 안내했다.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나 있었다. 여기서 보는 자연 풍광이 멋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빛이 달라졌다. 신비로웠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배에 오르면서 속으로 노래를 흥얼댔다.

"울렁울렁울렁대는 가슴 안고!"

배 안에서 나는 트위스트를 출 뻔했다.

알고 가면 좋은 울릉도

나리분지

화산 폭발 당시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어 형성된 평지로 축구장 28개 정도의 규모다. 주위에는 화산섬답게 뾰족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봉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해 화산이 만들어지면서 마그마 방이 수축하고, 마그마 위에 있던 화산이 무너져 내려 나리분지가 만들어졌는데, 나리분지의 틈을 따라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멀리 흐르지 못하고 제자리에 봉긋한 돔 형태의 알봉을 만들었다고 한다.

울릉 나리 억새 투막집

울릉 나리 억새 투막집

울릉도 개척(1883년) 당시의 집 형태를 간직한 투막집으로 1945년대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나무로 벽을 만들고 흙을 붙인 다음, 너와와 억새를 이용해 지붕을 얹은 구조로, 집 주위를 우데기로 둘러쳐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 지형 특성상 눈으로부터 집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태어난 게 1980년대라고 한다.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울릉국화와 섬백리향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꽃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개화시기는 9~10월. 섬백리향은 꽃향기가 백리까지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낮에는 향기를 느끼지 못하고 밤에 근처를 지날 때 강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신령수 족욕장.

신령수

일반 약수터처럼 생긴 신령수는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쪽에는 족욕장도 마련되어 있어 여름철에는 산행 후 발의 피로를 풀어 주는 것도 좋다.

울릉도 원시림

신령수 주변의 숲은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인봉 원시림이라고도 한다. 섬단풍나무, 솔송나무, 너도밤나무 등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들로 숲이 이루어져 있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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