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규모 6.8’ 강진 덮친 모로코… 고지대 산악 지역 탓 구조 난항

이지안 2023. 9. 1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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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000명 사망… 피해 왜 컸나
대부분 지진 취약한 진흙 벽돌집
맨손으로 잔해 뒤지며 수색 나서
주민들은 여진 공포에 ‘광장 노숙’
G20·국교 단절 알제리, 지원 의사
尹 “깊은 위로”… 韓도 동참 밝혀

“10초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지난 8일(현지시간)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폐허가 된 모로코 산간 마을 물레이 브라힘의 주민 아유브 투디테는 10일 AP통신에 지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실제로 이번 강진의 피해가 막심한 이유로 산간 지역 주택 대다수가 지진에 취약한 진흙 벽돌집인 탓에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붕괴한 점이 꼽힌다.

9일(현지시간)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모로코 마라케시 인근 마을 주택의 모습. 전날 밤 마라케시 서남쪽 약 71km 지점에서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해 2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마라케시=AP연합뉴스
지난 2월 튀르키예·시리아를 덮친 강진 때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잠든 심야에 지진이 발생, 신속히 대피하지 못한 점도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이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의 인명·경제 피해 규모가 애초 예상보다 훨씬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 추정치 평가를 ‘적색경보’로 조정하고, 이번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 미만일 가능성이 35%로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1만명을 넘어 10만명에 이를 가능성도 21%에 이른다고 전망했다. 경제 손실 규모의 경우 10억∼100억달러(약 1조3370억∼13조3700억원)에 이를 가능성이 37%로 가장 높았고, 100억∼1000억달러에 이를 확률도 24%나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3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USGS는 지진 직후 인명 피해 수준을 적색에서 두 단계 낮은 ‘황색경보’로, 경제 피해 수준은 한 단계 낮은 ‘주황색 경보’로 판단했으나 이를 상향했다. USGS도 상향 이유로 피해 지역 대다수 건물이 ‘어도비(지푸라기와 섞어 벽돌을 만드는 데 쓰이는 진흙)’ 벽돌로 지어진 점을 짚었다. 어도비 벽돌로 지은 전통 가옥들에는 내진 설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1960년 모로코 남서부 해안 도시 아가디르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 당시에도 지진에 취약한 건축물 구조가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망연자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9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지진으로 파괴된 자신의 집 옆에서 오열하고 있다.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71㎞ 떨어진 지점에서 전날 밤늦게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해 마라케시부터 수도 라바트까지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마라케시=AFP연합뉴스
마라케시 등 시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진에 취약한 석재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현지 주민들과 마라케시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여진 공포에 떨며 집이나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거리와 광장에서 밤을 새웠다. 마라케시의 관광명소였던 제마 엘프나 광장은 순식간에 이들의 피난처가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여진 걱정은 10일 오전 9시쯤 규모 4.5의 지진이 이어지며 현실이 됐다.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인 72시간이 다가오지만, 산간 지역은 구급차 통행마저 어려운 상황이라 구호 물품을 항공기에 실어 마을에 떨어뜨리는 방법까지 동원되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중장비가 도착하지 않은 지역의 구조대들은 주택 잔해를 맨손으로 뒤지며 수색 작업에 나서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모인 각국 지도자들은 앞다퉈 지원 의사를 밝혔고,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G20 정상회의 세션 발언 중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대한민국은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날 성명을 통해 “모로코 국민을 위해 필요한 어떤 지원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올해 초 5만명이 사망한 강진 참사를 겪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모든 수단을 다해 모로코 형제들을 지원하겠다”는 연대의 뜻을 표했다.
9일(현지시간) 모로코 우아르자자트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주민들이 광장으로 대피해 있다. 우아르자자트=신화뉴시스
모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서사하라 지역 영토 분쟁 문제로 2021년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는 폐쇄 상태였던 영공을 개방해 인도적 지원과 의료 목적의 비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의 진동은 알제리와 바다 건너 스페인·포르투갈에서까지 감지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스페인은 모로코 정부로부터 첫 공식 지원 요청을 받아 현지에 구조 인력을 보낼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과거 모로코를 식민 지배해 자국 내 모로코 출신이 많은 프랑스에서도 소방관들이 자원봉사팀을 꾸려 이날 오전 현지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세 문화유산도 지진 상흔… 울음소리 가득한 ‘신의 땅’

모로코를 강타한 규모 6.8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마라케시는 11세기에 건설된 고도(古都)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다. 영화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 ‘미이라’,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에 등장하며 할리우드의 단골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대부분의 사람이 집에서 쉬고 있던 8일 오후 11시 11분(현지시간)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71㎞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이번 지진으로 마라케시 구도심 메디나에서 일부 건물이 무너졌고, 주민들은 혼비백산한 채 집에서 빠져나와 몸을 피했다.
구조대원들이 9일(현지시간) 지진 진앙과 가까운 알 하우즈 지역의 잔해 속에서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물레이 브라힘=AFP연합뉴스
마라케시 북부의 한 주민은 “처음 얼마간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아내가 소리쳐 딸을 찾아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며 “거리는 아기를 안고 우는 사람들로 꽉 찼다. 여진이 있을까 봐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당시 상황을 전했다.

모로코 중부에 있는 마라케시는 베르베르인의 알모라비드 왕조가 1070~1072년에 건설한 도시다. 오랜 기간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였으며, 북아프리카에서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서부 무슬림 지역 전역에 영향력을 미쳤다. 베르베르어로 ‘신의 땅’을 뜻하는 마라케시는 ‘모로코’라는 국명의 어원이기도 하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와 궁전 등 많은 중세시대 문화유산이 보존돼 있고 기후가 화창한 데다 모로코에서 가장 큰 베르베르 노천 시장과 조약돌 거리, 미로 같은 통로 등 볼거리가 많아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모로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 국내총생산(GDP)의 7%를 관광산업에 의존했고, 그 대부분이 마라케시와 인근 지역에 집중돼 있다. 구도심 지역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마라케시의 지붕’도 훼손 69m 높이로 모로코 ‘마라케시의 지붕’이라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의 지진 전후 모습. 8일(현지시간) 밤 강진 이후 찍힌 오른쪽 사진을 보면 첨탑 지붕 주변이 손상을 입은 듯 연기와 먼지가 흩날리고 있다. X(옛 트위터) 캡처
이곳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미나렛)도 이번 지진으로 일부가 파손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69m 높이의 이 첨탑은 ‘마라케시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현지 매체들은 쿠투비아 모스크도 파손됐다고 전했으나 손상 정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구도심을 둘러싼 유서 깊은 붉은 성벽 일부가 파손된 사실을 보여주는 동영상도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로 전 세계인에게 많이 소개됐고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매년 마라케시 국제영화제도 열린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 ‘장사천재 백사장’에서 백종원이 한식을 만들어 파는 제마엘프나 광장 시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이지안·유태영 기자, 뉴델리=곽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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