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여긴 없다" 읍내 몰려든 수만명…'배터리' 꽂자 일자리 폭발
[편집자주]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된다. '지역 소멸'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그런데 비수도권에 생명수와 같은 일자리들이 창출되기 시작했다. 배터리 밸류체인을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가 지방의 희망이 되고 있다.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따라 수 십만개의 일자리가 충청·경상·전라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유력한 상황이어서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의 경우 보수적으로 봤을 때 연산 20GWh(기가와트시)당 3000~4000명 정도의 고용이 가능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충북 오창 공장(25GWh)에는 약 500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회사 측은 이곳의 생산규모를 33GWh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고용 역시 덩달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삼성SDI는 울산 공장(9~10GWh 추정)에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생산라인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SK온은 5GWh 수준인 충남 서산 공장의 규모를 20GWh로 늘리는 것을 확정했다. 배터리 3사를 통해서만 1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지방에서 창출될 전망이다.
범위를 넓히면 고용효과는 더욱 커진다. 양극재·음극재·분리막·동박 등 소재를 만드는 기업, 각종 장비 제작 기업들도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3사와 마찬가지로 주요 소재 업체들은 모두 비수도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모두 만드는 포스코퓨처엠은 세종, 경북 포항, 전남 광양 등에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양극재를 만드는 LG화학은 충북 청주, 에코프로는 청주·포항에 공장이 위치한다. SKIET(분리막)는 충북 증평, SKC(동박)는 전북 정읍,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동박)은 전북 익산이다.
배터리 및 소재 업체의 경우 △니켈·리튬 등 주요 원료 수입에 유리하면서 △넓은 공장 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전기차 공장에 가까운 곳을 생산라인으로 선호해왔다. 배터리 생산라인이 지방에 골고루 분포하게 된 이유다. 이같이 배터리 밸류체인이 지역 일자리 창출을 통해 '수도권 집중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차전지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NE리서치는 글로벌 전기차용 이차전지 수요가 올해 687GWh에서 2035년 5.3TWh(테라와트시, 1000GWh)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다. 배터리 소재사의 경우 북미·유럽 현지 진출에도 나서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국내 공장 증설에 힘을 쏟는다.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을 우대하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 특성상, 국내 생산라인 확보가 남는 장사이기도 하다. LG화학, LS, 에코프로, 엘앤에프 등이 '조 단위'의 투자를 통해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한 이유다.
향후 수 년 안에 일자리 수 십만개가 지방에 쏟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된 △청주(14만5000명) △새만금(20만1000명) △울산(7만명) △포항(5만7000명)에서만 50만명에 육박하는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배터리 및 소재 기업들에는 부수적으로 제련, 장비, 각종 인프라 업체들이 따라온다. 특히 생산라인 구성 장비의 경우 국산화율이 80~90%에 달한다. SK온 관계자는 "신규 배터리 공장에 들어가는 장비의 국산화율이 95% 이상이어서 중소·중견기업까지 일자리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지난 8월 기준 인구는 6만8727명으로 7만명에 육박한다. 이곳의 2014년 인구는 5만명에 불과했다. 지방소멸의 시대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2만명의 인구가 유입된 것이다. 오창읍은 무엇보다 가장 젊은 지자체 중 한 곳이다. 오창읍의 평균연령은 36.8세에 불과하다. 서울시(44.2세) 보다 7살 이상 젊은 셈이다.
이차전지 밸류체인 덕이다. 오창과학산업단지에는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이차전지 기업 약 40개가 밀집해있다. 전기차 산업이 본격 흐름을 타면서 배터리 수요가 급증했고, 자연스레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같은 추세는 향후 더욱 가팔라질 게 유력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창 공장의 생산능력을 기존 18GWh(기가와트시)에서 33GWh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자연스레 주변에 위치한 소재·장비·제련 관련 업체들도 직원을 더 많이 뽑아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오창읍의 사례와 같은 일들이 각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차전지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들의 경우 원료 수입 및 제품 수출에 용이한 인프라가 깔려있으면서, 넓은 공장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비수도권 지역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우 배터리 관련 생산라인을 만들 땅도 없을 뿐더러, 물류비도 비싸다.
실제 최근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된 충북 청주, 전북 새만금, 경북 포항, 울산광역시 모두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다. 민간투자 유치를 위한 인허가 간소화, 각종 규제 완화, 예산지원 등을 통해 이 네 지역을 이차전지 허브로 키우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이들 지자체가 기대하고 있는 고용효과는 총 50만명 수준에 육박한다. 특화단지에 속하진 않았지만 충남 서산(SK온), 전남 광양(포스코퓨처엠) 등도 이차전지 거점으로 불리기 충분하다.
이차전지 밸류체인은 지방의 양적인 성장 외에 질적인 업그레이드도 돕는다. 포항이나 광양과 같은 도시는 기존 '제철'의 범주를 벗어나 '배터리 1번지'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포항·광양), 에코프로(포항) 등을 중심으로 양극재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중이다. 포항의 경우 도시차원에서 양극재 100만톤 생산 및 매출 70조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 삼았다.
자동차와 중공업의 도시로 불리는 울산 역시 삼성SDI 중대형 배터리 생산시설이 자리한 울주군을 중심으로 소재·설비관련 기업 유치에 나선 상태다. 서산의 경우 LG화학·롯데케미칼·HD현대오일뱅크·한화토탈 등 주요 정유·석유화학 시설이 밀집해 있지만, SK온을 중심으로 배터리 밸류체인 도시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 3사가 최근들어 미국 및 유럽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일자리 측면에서 호재가 될 수 있다. 배터리 3사의 생산라인에 들어가는 장비의 90% 가량이 '메이드 인 코리아'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 장비 업체들에게 수출의 기회가 열릴 수 있는 셈이다. 피엔티·씨아이에스·에스에프에이·코윈테크·엔시스 등의 장비 업체들의 경우 비수도권에 사업장을 마련하고 있어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밸류체인에 속하는 사업은 명실상부 과거에 없던 '신사업'에 가까워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철강·조선 등 인건비 부담이 높은 산업의 경우 인구감소 기조 속에서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외국인 근로자 도입에 적극적"이라며 "석유·화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고용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령화·인구유출 등으로 고심하던 주요 지자체가 배터리 일자리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힘을 줬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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