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종 시대의 ‘멸공’[오늘을 생각한다]
현대 국가의 엘리트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역사적으로 축적된 가장 권위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킨다. 가령 2010년대 들어 중국공산당 엘리트들은 30여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정책으로 불평등과 노동착취 등 모순이 축적되고 곳곳에서 비공식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기존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인민에게 더 이상 작동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떠올려낸 것은 무엇일까? 바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어딘가에 묵혀 있던 국가주의 프로젝트였다. ‘국가 부흥’이란 과제는 민주주의나 시민불복종을 불가능케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민간 사회운동은 여느 때보다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비판적 지식인들은 반간첩법의 위력 앞에 침묵하고 있다.
이런 역변은 윤석열 대통령과 그가 대변하는 일군의 복고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엘리트 그룹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윤석열 정부와 그에 가장 친화적인 지지세력은 가장 구태의연하고 극우적인 방식으로 사회운동을 공격한다. 이를테면 윤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자신의 전폭적 지지를 향한 여론의 반응이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광복절, 느닷없이 “공산전체주의자”를 거론하며 역사적 독립운동의 스펙트럼을 오른쪽 한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주도했던 육군사관학교가 난데없이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결정한 것 역시 이런 공세와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장기적인 경기 불황이 전면화되자 윤 대통령은 높은 노조 가입률 속에서 건설산업 현장의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해온 건설노조를 향해 전방위적인 공격을 가했다. 노동자를 향한 이런 공격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민생에 위배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반공주의적 공격을 수행하는 데 진실 역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래로부터 이견이 형성되는 틈을 봉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이런 공세의 결과는 더 큰 불평등과 착취율일 것이다. 윤석열에게 ‘멸공’은 대체 뭘 위한 걸까?
오늘날 많은 시민이 절망하는 이유는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다지 나을 것 없는 거대 야당은 쉴새 없이 뒷걸음질 치고 있고, 핵심 정치인의 과오를 덮고 방탄행위를 하는 것에 올인하고 있다. 재야의 올드보이들은 사분오열해 구태의연한 민주-반민주 전선으로 회귀하고 있고, 심지어 몇몇은 괴물과 싸우다가 유사 괴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긴 어렵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식으로 크고 작은 모임을 다시 만들고, 민주주의와 평등, 기후정의와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연결해나가는 것만이 정치가 실종된 시대의 멸공 프로파간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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