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판[서중해의 경제 망원경](18)

2023. 9. 1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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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11월 11일 중국의 베이징 시내에 설치된 WTO 간판 옆을 지나던 한 중국인 커플이 손으로 ‘OK’ 사인을 그려보이며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축하하고 있다. / 베이징 AP=연합뉴스



“처음으로 미국기업은 제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하거나 귀중한 기술을 이전하지 않고도, 미국에서 미국 근로자가 만든 제품을 중국에서 판매 및 유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자리를 뺏기지 않고도 제품을 수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단순히 우리 제품의 더 많은 수입에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인 경제적 자유를 수입하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경제를 자유화할수록 중국 국민의 잠재력, 즉 진취성, 창의성, 놀라운 기업 정신이 더욱 자유롭게 해방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개인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그들은 (중국 정부에) 더 큰 발언권을 요구할 것입니다.”

2000년 3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중국의 WTO 가입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연설을 했다. 위에서 인용한 부분은 클린턴 대통령과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중국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가득 담겨 있다. 연설의 핵심은 중국이 WTO에 가입해 세계 경제의 일원이 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경제에 커다란 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나아가 중국 경제의 개방은 중국인의 경제적 자유를 실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자유화에도 기여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당시 중국은 매년 미국 의회에서 무역관행에 대한 심사를 받도록 돼 있었는데, 클린턴 정부는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하면서 미국·중국 무역 관계를 매년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로 전환하고자 했다.

중국은 2001년 12월 11일 WTO 회원국이 됐고, 2001년 12월 27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PNTR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중국은 WTO 가입 시에 약속했던 많은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이 취할 수 있는 무역집행 조치들에 대한 보호를 WTO라는 방패를 통해 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외국기업을 차별하고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비공식이지만 교묘한 중국의 중상주의적 정책에 대해 WTO는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WTO 가입은 미국이 기대했던 중국 경제의 내부 개혁을 추진하고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촉매로 작용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 위협하는 중국

20여 년이 지난 최근의 관점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을 읽으면, 중국에 대한 그의 낙관적 전망은 크게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많은 기업이, 그리고 다른 나라의 많은 기업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며 투자를 늘렸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2000년 이후 20년 동안 중국 경제 규모가 12배 증가했지만, 미국은 2배 증가했다. 2000년 중국 경제 규모는 미국의 12% 수준이었는데 2020년엔 70%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아직은 미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적용하는 환율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중국의 성장률이 높기 때문에 양국 간 경제 규모 차이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대체로 2030년대에는 양국의 경제 규모가 대등해지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8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개막한 브릭스(BRICS) 정상회의의 각국 대표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 요하네스버그 A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에 대한 지난 두 번의 칼럼에서 미국 전략의 전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제기했다. 과학연구의 글로벌 개방성으로 국가 간 기술교류의 원천적 봉쇄가 어렵고, 중국은 이미 상당수 전략기술 분야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앞에서 인용한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당시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담겨 있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본 것인데,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은 자유주의 노선과는 거리가 멀다. 올해 초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로 정책을 전환했지만 최근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시진핑 주석까지 나선 “나는 민영기업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 ‘국진민퇴’(국유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민영기업은 힘을 빼는 것)에서 ‘민진국퇴’로 전환하는 정책기조의 변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의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 전략에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외부적으로는 ‘일대일로’의 기치 아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응하고자 한다. 중국은 다방면으로 동맹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신흥 경제 5개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 등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초대했다. 이들은 2024년 공식 가입할 예정이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확대를 추진해온 브릭스 회원 확대는 그동안 인도가 반대했는데, 이번 회의에서 중국이 관철시켰다.

미국 디커플링 전략의 한계

미국은 동맹을 얼마나 규합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시기에 미국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미국 경제 규모를 배경으로 공산권에 대항하는 동맹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유럽의 자동차와 일본의 전자제품, 개도국의 섬유제품 등에 미국시장을 개방했다. 무역협정을 맺으면서 최혜국대우를 제공하는 것은 대외정책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미국 주도로 2022년 5월에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가장 최근에 미국이 시도하는 대외정책이다. 여기에는 한국을 포함해 14개 국가가 참여 중이다. 중국뿐 아니라 친중 성향으로 분류되는 아세안 3개국(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을 배제했다. IPEF 목표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의회를 우회해 IPEF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최혜국대우, 자유무역협정 등 실행력 있는 대외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체제는 아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각각 질문을 던져보자. 미국의 전략은 지속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라는 쪽으로 상당히 기운다. 소수의 전략제품을 제외하고는 미·중 간 교역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 미국 내 제조업 유치와 공급망 재구축은 부분적으로는 성공을 거두겠지만, 미국이 과거처럼 자국 시장을 내주지 않기 때문에 동맹 결속에 한계가 있다. 또한 참여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목표한 만큼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어려운 질문은 중국에 대한 것이다. 중국의 현 체제는 지속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달리 표현하면, ‘어떻게 이처럼 오랫동안 1당 지배를 지속할 수 있을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칼럼으로 넘어간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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